[벤처포럼]벤처, 죽어야 산다

 ◆에스나벤처그룹 이성연 대표

 벤처산업의 선순환 사이클은 수십개의 실패사례 속에 한개의 성공사례가 나오고 자본 및 인력이 이곳에 집중되면서 가능하다. 훌륭한 인재와 귀중한 투자자금이 경쟁력 없는 여러개의 벤처기업에 분산된다면 ‘너 죽고 나 죽기’식이 되고 만다.

 이는 실제로 벤처기업의 청산이나 인수·합병의 통계치에도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의 경우 벤처 관련 청산(shut-down) 사례가 2001년과 2002년 각각 1000여건을 넘는다. 인수·합병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국내의 경우 2003년 1분기에 청산된 벤처기업의 수는 10개 미만이라고 한다. 적자생존하는 자연스런 사이클에 따르지 않고 ‘일단 설립한 회사는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는 정서는 벤처산업에 있어서 적합치 않다. 우리나라 벤처산업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경쟁력 없는 벤처들이 인수·합병이나 청산 등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고 시장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을 제도적인 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벤처기업은 창업하기보다 청산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인수·합병에 관련된 복잡한 법규, 청산에 따른 절차나 관련 법규도 장애요소 중의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벤처창업자들의 회사에 대한 소유욕이다.

 자본유치가 용이치 않은 중소기업은 어쩔 수 없이 차입금에 의존해야 하겠지만, 벤처기업의 경우 투자자들을 설득하여 지분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벤처창업자들의 ‘소유욕’ 때문에 CEO가 무리하게 개인보증을 하면서 차입을 하게 된다. 국내의 경우 회사가 차입을 할 때 대표이사가 개인보증을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자본투자를 할 때도 보증을 요구한다.

 따라서 회사가 청산되면 보증을 선 CEO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향후 경제활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회사의 청산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려 하고 이는 결국 인수·합병이나 청산의 걸림돌이 되고 만다.

 이런 벤처 창업자들의 소유욕은 CEO 직책에 대한 집착에서도 나타난다. 해외 벤처기업들을 보면 재미있는 직함이 있다. ‘Founder and CTO(Chief Technical Officer)’가 그것인데 기술 위주의 벤처기업들을 보다 보면 종종 눈에 띈다. 창업자가 주요 주주로 남아있긴 하지만 CEO가 아니고 CTO 역할을 하는 경우다. 이 경우 CEO는 일정 지분이나 스톡옵션을 받고 외부로부터 영입된다. 창업자가 CEO가 아닌 것이 독특하다.

 국내 벤처기업들은 조금 다른 양상이다. 경영능력 여부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경우에 설립자가 CEO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 경영인을 CEO로 영입하겠다고는 말하지만 창업자가 대학교수 등 현직에 있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 이런 사례는 많지 않다.

 물론 영입할 만큼 유능한 CEO 후보자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연의 문제는 창업자들이 벤처기업을 ‘주주’들의 회사가 아니라 ‘내’ 회사라 생각하고 ‘소유’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그 근본원인이 아닌가 싶다.

 벤처기업의 청산이나 인수·합병을 보다 원활하게 유도하기 위해서는 기관 투자자나 사외이사 등 외부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벤처 창업자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제도적 문제 또는 회사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대체로 청산만은 피해 보자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다. 또한 회사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사업모델이나 경영환경을 대체로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청산이나 인수·합병을 통한 가치창출의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도 이를 외면하거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자들을 옆에 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벤처기업도 초기부터 이사회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훌륭한 엔지니어 출신이고 탁월한 기술력을 갖추긴 했지만 이런 전략적, 관리적 능력을 두루 갖춘 팔방미인은 아니다. 재벌 2세, 3세들이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 후계자가 돼 기업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많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벤처 창업자들도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기업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에 따라 벤처산업의 선순환은 이뤄질 것이고 벤처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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