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이공계 출신 공직 진출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과학의 달인데다 ‘과학의 날’(21일)과 ‘정보통신의 날’(22일)이 연이은 이번주는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단연 돋보인 한 주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해 정보통신인들을 격려했다. 또 참여정부 출범 후 줄곧 청와대에서 열던 정례 국무회의를 이날만은 정부종합청사와 과천청사 두 곳에서 영상회의로 진행했다. 형식적으로라도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대단함을 보여준 셈이다.

 이번주 대통령의 행보 중 과학기술인들이 눈길을 끈 것은 무엇보다 과학의 날 기념사를 통해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을 획기적으로 늘려 나가겠다”고 다짐한 것. 노 대통령은 “권력의 합리적 운용을 통해 소외됐던 과학기술인들이 권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5년 동안 이공계 출신들이 행정분야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제도를 고쳐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과학기술인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공직자 가운데 이공계 출신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또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직에 이공계 출신이 많은 나라는 중국이다.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부 요직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지난달 출범한 4세대 지도부의 후진타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대학에서 유체역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또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는 지질광산과,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역시 무선전자학과 출신의 테크노크랫(기술관료)이다. 전임 3세대 지도부를 이루었던 장쩌민 국가주석, 주룽지 총리도 이공계 출신이다.

 중국이 지금 무섭게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권력의 핵심부에 과학기술을 공부한 사람들이 앉아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은 우리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1종시험에서 절반이상을 이공계 출신으로 뽑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김태유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5급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이공계 출신 채용비율이 20% 미만”이라고 밝혔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공계 전공자의 임용비율은 현저히 낮아진다. 고급관료 중 이공계 출신이 9%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게다가 정보통신, 기계기술, 건축, 토목분야 직무에서도 대부분 인문계 전공 인력이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들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나라가 잘되란 법은 없다. 그러나 기술력이 중요시되는 사회구조에서 고급관료의 인문계 편중현상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우리사회는 이미 이공계 분야의 업무가 인문지식을 요구하는 업무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이공계 분야에서 인문계 전공자가 정책을 결정하면 전문성과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이공계 출신 공직등용 확대 발언이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지라도 이공계 전공 인력이 국가, 지방 고위공직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직 인력 구조개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과학기술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특히 제2과학기술 입국의 시작은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때 가능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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