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새로운 경쟁구도가 출현
반도체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CPU)와 디지털신호처리기(DSP)가 기술의 발달로 한 칩에 집적되는 컨버전스(융합)시장이 본격화하면서 업계에 새로운 경쟁구도가 출현하고 있다.
CPU 시장의 최강자 인텔이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가 장악하고 있는 DSP 시장에 진출하는가 하면, DSP 시장에서 TI의 견제자였던 아날로그디바이스(ADI)가 프로세서 기능까지 갖춘 DSP로 양사의 뒷덜미를 동시에 잡고 나섰다.
CPU와 DSP는 연산방식과 기능이 달라 그동안에는 각각 데이터 처리가 필요한 PC(CPU)와 음성과 영상처리가 필요한 휴대폰(DSP)으로 시장이 나뉘어 직접적인 경쟁은 없었으나 최근에는 컴퓨팅 기능을 갖춘 3세대(G) 휴대폰 등 휴대형 멀티미디어기기가 확산되면서 서로 시장을 넘보는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인텔, TI에 선전포고=인텔은 최근 TI가 장악하고 있던 휴대폰 시장을 겨냥해 엑스스케일 통신 프로세서에 GSM/GPRS 통신처리 기능을 추가한 베이스밴드칩세트를 내놓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휴대폰용 플래시메모리에만 주력해왔던 인텔이 상용화를 목적으로 베이스밴드를 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시장은 노키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있는 TI가 70% 이상을 점유해왔던 노다지였다.
양사의 경쟁은 한국시장에서 먼저 불이 붙었다. GSM 단말기를 제조, 수출하고 있는 맥슨이 인텔의 손을 잡았다. 맥슨은 이전에 TI의 고객사였다. 인텔은 맥슨과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유럽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또 인텔의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하고 있는 국내 대형 단말기제조업체들에 베이스밴드까지 통합솔루션을 제공, TI의 시장을 뺏겠다는 전략이다.
◇아날로그디바이스 딴죽 걸기=DSP시장의 2인자인 아날로그디바이스(ADI)가 새로운 복병으로 떠올랐다. ADI는 CPU와 DSP를 통합한 프로세서 ‘블랙핀’을 내놓고 TI와 인텔의 행보를 가로막고 나섰다. ‘블랙핀’은 600㎒급 속도에 1.2GMACS(초당 10억회의 곱셈 누적 연산)의 멀티미디어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3G 휴대폰이나 캠코더 등에서 MPEG4와 H.264 같은 고성능 멀티미디어 영상처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TI를 겨냥해서는 전력소모량과 원가경쟁력을 내세울 계획이다. ‘블랙핀’이 1MMC당 전력소비가 0.15㎽대로 낮아졌다는 점을 TI 고객사들을 공략하는 소구점이다.
인텔도 예외가 아니다. MSA(Micro Signal Architecture)라는 기술을 공동 개발했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엄한 것. 인텔이 진출하려는 휴대폰시장을 대응하는 한편 인텔의 영원한 우군인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홈 서버 플랫폼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승자는 누구=이처럼 CPU와 DSP가 함께 내장(임베디드)되는 시장이 급성장하면 할 수록 향후 경쟁구도는 더 치열해 질 전망이다. 임베디드 프로세서업체 ARM과 후순위 업체이긴 하지만 DSP시장의 모토로라와 아기어, 인피니온 등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어느 한 업체나 기술의 영역으로 구분짓기 어려운 시스템온칩(SoC)시장에서의 경쟁구도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초소형·저전력소비의 기술경쟁력과 원가경쟁력을 누가 갖추는가가 관건이다.
TI코리아 응용기술담당 김영수상무는 “3G휴대폰·PDA·디지털카메라 등 DSP 응용시장이 넓어지면서 경쟁사들이 잇따라 진입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특화된 기능과 SW를 제 때 제공하는 20여년 TI의 노하우를 따라잡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