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단말기 1대 가격은 보통 450달러(약 55만원), 이동통신서비스를 사용하려면 신청 후 최고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통화 품질은 엉망이고 대화 중 끊기기가 일쑤다.
이는 중남미 코스타리카 이동통신시장의 상황이다. 이런 열악한 통신환경의 주범은 다름아닌 국영통신기업 ICE(Instituto Costarricense de Electricidad). ICE는 코스타리카의 통신과 전력사업을 독점하는 거대 공기업이다.
지난 80년대와 90년대 코스타리카는 일찌감치 이동통신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불안에 시달리던 이웃나라들에 비해 앞서갔다. 그러나 최근 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 위축과 공기업의 비효율성 등으로 통신서비스 수준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웃나라 엘살바도르의 휴대폰 보급률은 15%로 코스타리카의 12%보다 높다. 휴대폰 보급률이 6%에 불과한 니카라과도 단말기 가격은 코스타리카의 3분의 1 수준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ICE는 코스타리카 국민의 사랑과 신망을 받고 있다는 것. 49년 내전 종식 이후 설립된 ICE는 빈민들에게 전기와 전화를 보급하며 근대화와 진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커피농장주 등 기득권 세력에 맞서 새로 들어선 민주정부에 힘을 모아주기 위해 전기·통신 등을 독점하는 막강한 힘을 얻었다.
ICE에 애정을 느끼는 국민 정서 때문에 정부의 ICE 민영화나 구조조정 노력은 번번히 벽에 부딪혔다. 지난 2000년 미구엘 안겔 로드리게스 대통령이 ICE의 민영화를 추진했을 때 ICE는 무려 22일간 파업을 하며 맞섰다. 국영통신기업을 민영화하고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지만 코스타리카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다.
그러나 ICE의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서 정부는 더이상 손놓고 있을 여유가 없어졌다. 재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ICE의 재정 적자는 4000만달러에 이르지만 ICE는 올해도 지출을 75% 늘릴 계획이다. 코스타리카 국내총생산(GDP)의 6%를 산출하는 ICE의 재정 확대는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재무부는 “지출 40% 증가까지는 합의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ICE는 재정 지출을 통해 통신망을 확대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ICE는 올해 40만회선을 추가설치하기 위해 프랑스 알카텔과 1억5200만달러 상당의 계약을 맺었다. 또 내년 60만회선 추가설치 계약을 놓고 모토로라와 에릭슨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다.
ICE는 이를 통해 2006년까지 이동통신 보급률을 50%까지 끌어올리고 신청 후 2일 안에 이동통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민영화를 거부하는 ICE의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며 “먼저 통신시장에 경쟁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코스타리카 ICE 본사-코스타리카의 통신 및 전기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공기업 ICE의 본사. 질 낮은 통신서비스에도 불구하고 민영화에는 여전히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산호세 전경-중남미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 전경. 코스타리카는 주위 국가들에 비해 정치·경제가 비교적 안정되고 통신서비스가 일찍 발달했지만 국영통신기업 ICE의 비효율로 최근에는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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