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애 이컴앤드시스템 해외마케팅 사장 jbnt@choi.com
요즘 커피 한 잔 뽑아달라는 ‘차(茶) 시중’ 문제에서 비롯된 교장 자살사태로 교육계가 매우 시끄럽다.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들게 하는 전근대적 교육풍토가 문제라는 쪽과 조직생활에서 윗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공경심도 없는 젊은 교사들이 문제라는 쪽으로 여론이 나뉘더니 급기야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도대체 커피 한잔에 얽힌 논쟁으로 귀한 생명까지 끊는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아직 이런 수준밖에 못되나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입사 초기에 차 심부름을 하는 일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세월이 바뀌면서 회사에서 손님이 올 때 커피 한 잔 뽑아달라고 부탁받는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여직원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직장에서 굳이 젊은 여성에게 차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남성 위주의 성차별적 발상이라는 것이 신세대 커리어우먼의 불만사항이다.
하지만 조금 시각을 달리 생각할 필요도 있다. 어떤 조직이든지 윗사람은 나름대로 권위를 누리고 싶기 마련이다. 그것이 커피 한 잔의 시중이든 입에 발린 아부든 아랫사람이 갖추는 형식적 예의는 상사를 기분좋게 한다. 이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조직에서 경륜이 쌓이면 비슷해지는 성향이다. 따라서 여교사에 대한 커피 심부름이 딱히 남성 위주의 권위주의적 발상에서 나왔다고 비난할 성질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교장 선생은 자신이 신임교사 시절부터 늘상 봐왔던 윗사람에 대한 형식적 예우, 그것도 극히 일부를 신임교사에게 요구한 것 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필자는 회사에 손님이 오면 주로 직접 차를 대접하지만 가끔 남자 직원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남자 직원이 커피 몇 잔을 뽑아주면서 성차별적 행위라고 불쾌한 내색을 보인 적은 없다. 그저 회사생활에서 흔히 돌아가는 일상사일 뿐이다.
교육계에 폭풍을 몰고온 진원지인 충남 예산군 보성초등학교에 어떤 사람이 커피 자동판매기를 기증했다는 소식이다. 이 선량한 시민은 택배로 커피 자판기 한 대를 보내면서 차 심부름이 이렇게 커다란 문제로 확산된 데 놀랐고 이 자판기가 관계자들의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학교 관계자에게 부탁했단다. 참 좋은 아이디어다. 하지만 커피 자판기는 직장내 차심부름을 둘러싼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자판기 커피도 누군가 동전을 넣고 뽑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탁자에 갖다주는 역할을 놓고 또 직장 내에서 남녀간의 설전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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