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공학은 이론과 현실의 간격이 매우 극명하게 벌어지는 영역이다.
머리 속에서 구상하는 로봇의 성능과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메커니즘은 전혀 다른 세계라고 간주해도 된다. 아이들이 종이 위에 낙서를 하듯이 온갖 첨단기능을 이상적으로 갖춘 로봇을 설계하는 것은 아주 쉽다. 초강력 모터와 고감도 센서, 투시카메라, 초합금 보디. 이런 첨단사양을 조립만 하면 태권V라도 금방 나올 듯하다. 과거 만화영화에선 설계도면만 훔쳐내면 빌딩만한 슈퍼로봇도 금방 뚝딱거려 만들곤 했다.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각 부품기술만 진보하면 이를 조합한 로봇제작은 아주 쉬울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곁에 선보이는 가정용 로봇의 성능을 살펴보면 일류 대기업이 명예를 걸고 개발했다는 최신로봇조차 대중의 기대에 턱없이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의 힘세고 다정한 로봇친구를 꿈꾸던 보통 사람에게 첨단로봇공학이 털어놓는 ‘기계적 현실’이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쓸 만한 로봇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로봇제작에는 직접 시행착오를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 변수, 장인의 노하우 같은 영역이 곳곳에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요소는 설계도상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최종 제작된 로봇의 완성도에는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로봇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 중에는 스케일 이펙트란 것이 있다. 이는 최적의 로봇성능을 구현하는데 로봇의 크기가 핵심변수라는 뜻이다. 특히 보행로봇의 경우 모터의 구동력과 기계적 제어능력, 로봇중량을 감안할 때 더 커도 작아도 곤란한 이상적 사이즈가 분명히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이족보행로봇이 어른신장의 4분의 1, 무릅에 오는 사이즈가 안정적인 걸음걸이를 유지하는데 가장 적당하다고 평가한다. 보행로봇이 성인키의 2분의 1, 허리까지 커지고 같은 템포의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16배나 강력한 관절모터가 요구된다. 만약 어른키의 보행로봇을 만들려면 무려 16×16배 센 모터를 주렁주렁 달아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거대한 마징가 로봇이 꿈인 이유는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 동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전 국내 한 연구소에선 50억원을 들여 반인반마(半人半馬)처럼 생긴 4족 보행로봇을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첨단 로봇기술을 한데 모아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화근이었다. 시연효과를 위해 온갖 기계모듈을 로봇에 장착하다 보니 로봇의 덩치와 무게는 계속 비대해졌다. 나중에는 로봇중량을 줄이기 위해 배터리 대신 외부에 전원줄까지 연결해도 뒤뚱거리는 가분수 구조로 변했던 것이다. 로봇공학은 교과서의 이론보다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진보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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