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를 털기 위해 범인들은 연구소에서 특이한 기기를 훔쳐온다.
이 기기는 반경 수십 ㎞의 전기시설을 고주파로 일정시간 멈춰버렸고 범인들은 유유히 현금이 가득한 카지노를 단 몇 분만에 털어버렸다.
몇 해 전 개봉됐던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일레븐의 한 장면이다.
영화 속의 내용이었던 이 특이한 기기는 최근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자폭탄(e-Bomb)을 사용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미국이 사용한 전자폭탄은 영화 속 기기가 단순히 전기시설을 몇 분간 멈췄던 것에 비해 관련시설을 모조리 녹여버리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기다.
미국은 1958년 태평양 상공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 방출된 감마선이 대기 중 산소와 질소를 때리면서 마치 파도처럼 전자기 펄스를 만들어내 수백 ㎞ 떨어진 곳에 영향을 미친 것을 확인했다.
이 당시 하와이에서는 가로등이 모두 꺼졌고 호주에서도 무선항해에 지장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목격한 미국은 이때부터 전자기 펄스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해 미 공군 로스앨러모스연구소는 전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전자폭탄의 원리는 1925년 물리학자 콤프턴이 발견했다.
고에너지 상태의 빛을 원자번호가 낮은 원자에 쏘면 전자를 방출한다는 것이 ‘콤프턴 효과’다.
이 원리를 이용해 전자폭탄 내부에서 초기 전자기 펄스가 만들어지고 이를 수천만 암페어의 강한 전자기 펄스로 압축하는 것이 ‘플럭스압축장치(FCG)’다.
전자폭탄은 전자기 펄스(EMP:Electromagnetic Pulse)로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상대방의 전자장비를 무력화하는 신종 무기다. 전자폭탄의 공식 명칭은 고전력 극초단파 빔(HPM)이다.
이 폭탄은 위성유도안테나와 폭발성 초단파 발진기, 폭약, 전지, 미사일 제트엔진 등 5개 부분으로 구성된다.
화염과 우라늄을 뿜어내는 다른 폭탄과 달리 20억 와트의 전력을 내뿜는 이 폭탄은 반경 330m 이내의 모든 전자장비를 무력화시킨다.
20억 와트는 소양강 댐을 한달 동안 가동해야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전력량이다.
이 폭탄은 PC는 물론이고 모든 전자 컨트롤러와 발전소, 상하수도, 지하철, 교통 신호등, 자동차의 컨트롤러, 군사용 레이더 심지어 전자레인지까지 작동을 멈추게 한다.
피격받은 지역은 전기, 물, 가스, 방송 등 모든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전자폭탄으로 이라크 국영 방송사를 공격해 TV방송과 위성TV를 중단시켰다.
이 당시 전파 송신기도 파괴돼 영국에서 이라크의 24시간 위성 TV 신호가 잡히지 않는 등 위력을 발휘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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