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59)기계인간의 이름

 사람과 흡사하게 닮은 금속기계가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로봇.

 똑같은 질문을 100년전의 사람들에게 물어봤다면 자동인형(automata), 살아 움직이는 인형(animated doll) 등 엉뚱한 대답이 튀어 나왔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로봇이란 보통명사는 불과 80여년 전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는 자신의 희곡에 등장하는 기계 인간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일지를 두고 며칠을 고민했다. 희곡의 줄거리는 모든 사회활동을 기계에 의존하는 미래사회에서 기계인간이 반란을 일으켜 인류가 멸망한다는 이야기였다.

 “주인을 공격하는 기계 인간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 카렐 차페크는 당시 서구의 모든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인근 러시아에서 불과 3년 전에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의 여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계 최초의 공산혁명으로 전 유럽이 들썩거리던 시절. 글깨나 읽었다는 지식인이 모이면 새로운 이상사회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밤새워 토론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카렐 차페크는 희곡 속의 기계인간에게 반항적인 노동자 계급의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체코어로 강제 노동을 뜻하는 ‘로봇’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로써 사람을 닮은 금속기계는 신기한 볼거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정치적 상징물로 격상된 것이다. 로봇은 매우 시의적절한 신조어였고 전염병처럼 전세계로 퍼져나가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당연히 그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 R.U.R.’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다. 모든 로봇서적에 지겹도록 인용되는 ‘로봇의 기원은 카렐 차페크의 ...’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로봇이라는 신조어는 지구 건너편 조선의 지식층에 금세 회자되기 시작했다. 춘원 이광수는 1923년 일본어 번역본으로 ‘롯삼이 발명한 유니버어살 로보트’를 읽고 쓴 감상문에서 ‘사람이 사람의 손으로 창조한 기계적 문명에 노예가 되며 마침내 멸망하는 날을 묘사한 심각한 풍자극’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 작품은 1925년 우리말로 번역돼 조선의 대중도 반항적인 기계인간으로서 로봇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로봇이란 말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서구인들은 오락적 존재로서 살아있는 금속인형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로봇이 보통명사로 자리잡은 이후 첨단기계문명의 모순점이 부각될 때마다 로봇은 온갖 상징적인 악역을 떠맡아 돌팔매질을 받아야 했다.

 마침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됐다. 양측의 군사력 격차를 감안할 때 전쟁이라 부르기도 무색한 일방적인 학살극만 남은 셈인데 그 선봉에는 미군의 첨단로봇들이 앞장서고 있다. 모래참호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이라크군에게 멀리서 다가오는 무인정찰기, 로봇이란 어떤 존재일까. 카렐 차페크가 그 광경을 본다면 코란에 나오는 악마의 이름을 로봇에 붙였을 것이다.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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