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만남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아담과 이브의 만남, 예수와 세례요한의 만남, 해모수와 유화의 만남,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만남, 존 F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의 만남, 스탈린과 루즈벨트 그리고 처칠의 만남,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만남 등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또 하나의 역사를 창조할 만남이 있다. 바로 자동차와 컴퓨터의 만남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삶에 들어온 것은 지난 40년대부터다. 이후 불과 60여년 동안 컴퓨터는 사람들의 일터와 주거공간, 공공장소에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생활패턴과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무기기로, 가전으로 또는 오락도구로 무한한 사랑을 받아온 컴퓨터는 아예 모든 사물 안에 들어가 유비쿼터스컴퓨팅 환경(ubiquitous computing)을 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왜 자동차일까.
사람이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보유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하루 중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평균 1.5시간. 과거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이 수치는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자동차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집이나 사무실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연료비, 보험 등 자동차 유지비 외에도 자동차용 오디오와 비디오, 내비게이션시스템, 자동차 액세서리 등을 구입하며 노동자 한달 평균임금 중 30% 이상을 자동차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전세주택에 살면서 자동차를 먼저 구입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작금의 사회추세는 자동차가 이제 중요한 생활공간의 하나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생활공간에서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존재한다면 또는 생산활동이나 소비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이런 당연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21세기 자동차는 이제 ‘내연기관을 갖춘 단순한 운송수단’에서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동력기관을 장착하고 항시 외부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움직이는 생활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문화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수반한다.
자동차 제조업체는 좋은 품질의 차량을 값싸게 제조한다는 비즈니스 목표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고품질의 자동차 사용경험(quality auto experience)을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즉 차를 단순히 판매하는 데 결부되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판매 이후 차량이 품질을 유지하게끔 하는 서비스(원격진단, 긴급구난 서비스 등)와 고객에게 차량과 관계하는 생활 전반에 관한 서비스(레저, 여행정보, 숙박정보 등)를 제공하는 것까지가 자동차 제조업체의 관심영역인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매체는 바로 텔레매틱스다.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전세계적으로 이제 막 걸음마중이다. 최대 자동차회사인 GM이 ‘온스타’라는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내로라하는 완성차업체들이 대거 텔레매틱스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자동차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등 IT업체, 보험업체도 텔레매틱스 시장을 구성하는 한 축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들이 앞장서 텔레매틱스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대우자동차(현 GM대우)를 시작으로 현대기아자동차와 르노삼성 등이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정보통신기업인 SK텔레콤과 SK도 시장참여를 선언했다. 삼성 역시 보험사인 삼성화재를 통해 올해 이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전략이다.
대기업의 행보는 특히 기존 영역의 확장, 경계의 파괴, 이종 산업간의 통합(convergence)이라는 경제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자동차와 정보통신기술, 서비스와의 통합은 또다른 산업영역을 탄생시키고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관심도 각별하다.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등 여러 부처가 텔레매틱스를 차기 정책과제로 꼽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로 산하단체로 출범한 자동차텔레매틱스포럼과 텔레매틱스포럼은 각각 관련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정책에 반영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또 기업들의 해외진출시 국내 텔레매틱스 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후방부대 역할도 자임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자동차부품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의 표준화 활동과 연구개발 활동도 물밑에서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물론 텔레매틱스 시장의 현주소나 평가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비관론도 만만찮다. 90년대 텔레매틱스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이후 10년 동안 아직 이렇다할 성공사례가 없었던 점, 막대한 투자비용이 드는 데다 수익모델을 찾기 위한 다양한 접근이 여전히 시도 차원에 머물러 있는 점 등이 시장에 뛰어드는 많은 기업들에 확신을 안겨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텔레매틱스 시장은 시작됐다. 기업, 소비자, 정부 등 경제주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특히 텔레매틱스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관심이 본격적인 경제활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는 올해는 국내 텔레매틱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전망이다.
또한 소비자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서비스로 다가갈 것인지에 대한 기업들의 끊임없는 고민이 앞으로 시장의 경쟁력을 키워갈 것이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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