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정용 에어컨시장의 3대 메이커로 LG전자·삼성전자·만도공조를 꼽는다. 앞의 두 업체는 국내 가전, 아니 전자시장을 대표하는 그야말로 투톱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들의 위상은 높아져가고 있다.
하지만 만도공조는 다르다. 삼성전자·LG전자와 기업의 매출이나 수익, 기업가치, 인력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기업의 역사도 일천하다.
그런 만도공조가 LG와 삼성전자의 틈새를 비집고 에어컨 분야에서 꾸준히 3위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자본력과 마케팅, 브랜드력 면에서 대기업과 비교조차 되지 않으면서도 업계를 주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만도공조(당시 만도기계)가 처음 에어컨을 내놓은 건 94년이다. 자동차 전장품을 만들던 중소기업이 에어컨을 생산해 소비자에게 선택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제품을 내놓기 전인 93년 말 직원들은 일본 기상청에 94년의 날씨 전망 데이터를 의뢰했다. 다음해의 월별 강수량 예측, 기온 변동 추이 예상치 등 각종 데이터 자료를 받아본 결과 94년에는 엄청난 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기상청에도 다시 한번 의뢰한 결과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94년 이들의 예상대로 엄청난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사람들은 야간에도 더위에 시달렸고, 밤이면 돗자리를 들고 한강변에 나와 더위를 식히는 현상이 발생했다. ‘열대야’란 말이 처음 등장한 때가 바로 94년이라고 한다. 당연히 에어컨 수요가 크게 늘었다.
대기업들은 늘어나는 에어컨 수요에 따라가지 못했다. 물건이 달려 제대로 공급할 수 없었다. 7월과 8월 대기업의 제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도의 ‘위니아 에어컨’만이 지속적으로 제품 공급을 이뤄냈다. 무더위를 예측하고 생산량을 당초 예상보다 늘렸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위니아’ 에어컨을 차선으로 선택했다. 만도는 출시 첫해에 시장점유율 13%라는 결과를 얻으며 단숨에 3대 에어컨 메이커로 자리잡았다.
수요예측은 에어컨 같은 계절상품의 경우 중요성이 더해진다. 특정 시즌에 판매되는 양이 전체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생산 및 공급이야말로 기업의 수익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점에 적절한 규모로 제품이 공급될 수 있도록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다시 계획하는 일련의 활동은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시장에서 외면당하지 않는 길이다.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며,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전문기관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이유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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