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신화는 기독교 문화와 함께 서양 문화의 양대 축이다.
예술, 문학, 철학, 천문학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그리스로마신화를 모르면 서양 문화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지혜와 상상력과 교훈이 한 데 녹아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로마신화다. 이 작품의 모체가 된 홍은영씨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가 재작년에 출판되면서 우리나라 출판만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지금까지 그리스로마신화라 하면 신들의 이름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어렵게만 인식되어 왔는데, 이걸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만화로 구성해 신화신드롬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이 결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된 난관은 과연 얼마나 원작의 성공적 요소를 이어갈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화려하면서도 개성있고, 또한 아름답지만 평면적일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을 입체적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자면 불가피하게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에 있어서 부분적인 수정이 필요했다. 또한 스토리라인에 있어서도 TV라는 매체적 특성을 무시할 수 없는 각색의 불가피한 요인이 발생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신화는 ‘인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부정적인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 더구나 애니메이션의 가장 일차적인 소비자가 어린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교육적인 요소에 대한 진지한 고려와 성찰이 필요했다. ‘제우스의 바람기와 헤라의 질투심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식들을 태어나자마자 삼켜버리는 크로노스와 아버지를 무찔러야 하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제작진들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정립했다. 첫번째는 어린이들의 시각에서 교육적인 관점을 견지한다. 즉 패륜과 불륜적 에피소드는 과감히 배척한다. 둘째는 원전의 이야기 흐름, 구성 및 설정은 최대한 살리되 너무 심각하거나 진지해 질 수밖에 없는 국면은 팬터지와 코믹한 요소를 최대한 가미하여 가급적 무겁고 답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방향성 때문에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전체적인 구성을 조율하고, 에피소드를 가다듬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탈고된 시나리오를 과감하게 폐기처분했다. 시나리오 한편 한편의 디테일의 문제가 아니라, 39부작이란 방대한 스케일에 통일감을 주기 위한 눈물의 작업이었다. 밤샘작업은 비단 PD와 작가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600여 캐릭터를 개발하고 수천·수만가지의 배경과 소도구, 소품을 준비해 온 디자인팀들, 그리고 까다로운 삽화체 애니메이션의 속성상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리테이크를 묵묵히 수용해 준 동우의 메인프로덕션팀 그들의 희생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그토록 짧은 기간내 주 2편씩 순발력있게 방송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캐릭터 사업과 비디오, 온라인 사업 등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준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희망’이었다고 한다. 방송이 반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우린 감히 이 작품을 희망의 싹이라 부르고 싶다.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모르는 한국 애니메이션에 소중한 희망이 되길 바란다.
<김재영 SBS PD pico@sbs.co.kr>
많이 본 뉴스
-
1
내년 '생성형 AI 검색' 시대 열린다…네이버 'AI 브리핑' 포문
-
2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3
LG이노텍, 고대호 전무 등 임원 6명 인사…“사업 경쟁력 강화”
-
4
AI돌봄로봇 '효돌', 벤처창업혁신조달상품 선정...조달청 벤처나라 입점
-
5
롯데렌탈 “지분 매각 제안받았으나, 결정된 바 없다”
-
6
애플, 'LLM 시리' 선보인다… “이르면 2026년 출시 예정”
-
7
'아이폰 중 가장 얇은' 아이폰17 에어, 구매 시 고려해야 할 3가지 사항은?
-
8
국내 SW산업 44조원으로 성장했지만…해외진출 기업은 3%
-
9
반도체 장비 매출 1위 두고 ASML vs 어플라이드 격돌
-
10
삼성메디슨, 2년 연속 최대 매출 가시화…AI기업 도약 속도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