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를 맞은 그래미상이 신예 여가수 노라 존스를 ‘올해의 인물’로 배출하며 막을 내렸다. 지난해 재즈팝 성향의 앨범 ‘Come away with me’와 여기에 수록된 곡 ‘Don’t know why’로 주목받았던 노라 존스는 당초 유력했던 수상후보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화제의 트러블 메이커 에미넴을 꺾고 그래미상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그래미상은 현재 시상부문이 200개가 넘어 과연 무엇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가장 중요한 부문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최우수 신인’ 등 4개 부문으로 압축된다. 노른자위라고 할 바로 이 네부문을 노라 존스가 석권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그래미상이 노장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이 넷을 싹쓸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미상하면 떠오르는 에릭 클랩턴과 산타나도 신인상의 벽에 걸려 4개 부문 쾌척은 이루지 못했다. 반드시 그 해에 나온 신인이라야 이 위업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81년 당시 신인으로 ‘Sailing’을 크게 히트시켰던 크리스토퍼 크로스가 4개 부문을 석권한 바 있다.
노라 존스는 22년만에 불가능하다던 그 위업을 재현했다. 그의 승리는 지난해 팝의 경향을 대변한다. 2002년은 유난히도 에이브릴 라빈, 바네사 칼튼 등 신인 여가수가 분전했다. 하지만 그래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음반예술과학아카데미(NARAS)의 1만2000 회원들이 압도적으로 노라 존스에게 손을 들어준 것은 뉴욕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라의 음악이 우수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구사한 ‘스탠더드 재즈’의 고향이 뉴욕이고, 뉴욕은 9·11 테러의 피해지역으로 미국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곳이다. 이번 시상식도 이를 반영해 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던 시상식이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거행되었다. 이를테면 미국과 뉴욕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노라 존스가 최적의 인물로 낙점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이 점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점칠 수 있지만 아마도 그래미측은 노라 존스로 훨씬 더 큰 충격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게다가 음악 관계자들은 노라 존스가 60년대 사이키델릭 시대에 각광받은 인도악기 시타르를 연주하며 서방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라비 샹카의 딸이란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생소한 인물이 아니라 ‘음악적 뿌리’가 있는 인물은 아무래도 점수를 딸 수밖에 없다.
이번 그래미상은 뉴욕에 대한 위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미국적이고 나아가 보수적인 성향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에미넴·넬리와 같은 랩을 선호하는 젊은 팬들은 또 다시 두 영웅이 홀대(?)되는 것을 보고 그래미상에 대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하며 실망했을 것이다. 올 그래미상은 그것이 세계 대중음악의 축전이 아니라 오로지 ‘보수적 미국’의 행사임을 다시금 말해주었다.
임진모(http://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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