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SI계열사인가.’
최태원 SK(주) 회장이 SKC&C와의 주식 고가매매 혐의로 지난 22일 구속된데 이어 이건희 삼성회장의 장남 재용씨와 삼성SDS와의 관계가 다시 부각되면서 재벌계열 SI회사들의 그룹 내 기능과 역할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SI계열사가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 사주일가 지원, 그룹관련 지급보증 등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계열의 SI회사는 지난 80년대 중반 삼성·LG·현대·대우·선경 등이 그룹차원의 전산화와 통합관리를 염두에 두고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전산실 직원을 한데모아 별도 회사를 출범시키면서 하나 둘씩 생겨났다.
이들이 바로 삼성SDS·LG CNS·SKC&C·현대정보기술 등이며, 이런 추세는 지난 90년대 들어서 30대 기업 전체에 이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SI기업들이 ‘그룹 오너 경영’의 매개체 및 부당 내부거래 창구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른 계열사들도 막대한 SI물량을 안겨주고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이번 최 회장 구속에서도 나타나듯 SI기업은 ‘그룹 IT 전령사’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오너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부당 내부거래 사실을 숨기기 위해 SI회사를 중간에 끼워넣거나 전면에 내세워 주식가격을 임의로 정하고 계열사끼리 사고팔게 하면서 이득을 챙기는 등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창구가 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 회장 구속의 계기가 된 워커힐호텔 주식 맞교환 역시 SKC&C가 직접 관련돼 있는 것이다. 다른 SK 계열사들은 최 회장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는 SKC&C에 대해 시스템통합·운영(SM) 용역을 수주하도록 돕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지난 97년 SKC&C로부터 통신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정상가보다 높은 가격에 구입하다 공정위에 적발되기도 했다. SKC&C는 이를 통해 확보된 자금으로 그룹 계열사들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지난 99년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 230여만주를 재용씨에게 주당 7150원이라는 싼값에 넘긴 것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지원 사례로 꼽힌다. 당시 SDS 주식은 장외에서 5만원선에 거래되고 있었다. SDS는 또 한 때 재용씨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인터넷비즈니스 ‘가치네트’ 사업이 지난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자 지분인수 등 뒤처리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재벌들은 SI계열사들을 오너의 지배구조 강화수단의 역할로 이용하는 동시에 이를 위해 SI계열사에 대해 막대한 규모의 용역을 수주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대신 SI계열사들은 그룹으로부터 안정적인 수익원을 보장받아 왔다. 30대 SI기업들의 경우, 그룹 계열사들의 물량인 이른바 ‘선점시장(captive market)’을 바탕으로 많게는 전체 매출의 70% 가량을 채울 만큼 안정적인 수요처를 가져왔다. 특히 그룹 계열사들은 SI계열사에 시스템관리 서비스 단가를 원가에다 7% 안팎을 더 얹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에 힘입어 재벌계열 SI업체들은 해마다 두자릿수의 매출 성장세를 보여왔다. 그룹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셈이다. 대형 SI업체들은 이렇게 그룹에서 지원해준 ‘탄알’을 밑천삼아 대외 사업에서 출혈 경쟁을 벌여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I기업들이 IT산업 발전의 견인차라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번 최 회장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사실상 그룹과의 부당 내부거래와 지원을 통한 오너의 ‘친위대’로서의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라며 “이같은 경영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SI기업들의 기능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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