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근 한국HP 사장 joon-keun_choi@hp.com
최근 우리나라는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본부나 연구소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참여정부 또한 한국을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경제자유지역을 만드는 등 해외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의 발달로 이제 해외 기업의 아태본부 유치는 실질적인 의미가 많이 축소됐다. 업무의 대부분이 원격으로 이루어져서 법적인 본부가 특정 국가에 있더라도 직원은 한국·싱가포르·홍콩·호주 등 원하는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한국을 외국인을 위한 인프라를 잘 갖추어 근무하고 싶고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국가 이미지는 물론 경쟁력 제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이 동북아 중심지로서 다국적 기업과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고려사항이 있다. 하나는 법인으로서 한국에 대한 투자가 비즈니스에 유리해야 하며 두번째는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살기 편하도록 해줘야 한다. 법인으로서 투자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인세·소득세·투자소득공제 등의 세제혜택, 회사 설립을 위한 각종 규제의 개혁을 통한 빠른 행정절차가 필요한데 이는 법적·행정적 노력이 뒤따라야 개선이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고급인력이 근무지로 한국을 선택하고자 할 때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의 삶의 질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영어가 통하는 곳이 한정돼 있다. 도심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영어로 의사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 한해 월드컵을 치르면서 외국인 손님을 맞기 위해 표지판·버스행선지 등에 영문표기를 병행하고 영어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또 외국인 자녀 교육문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다. 서울 소재 외국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외국인들의 평균 해외근무가 3∼4년임을 고려할 때 아이를 1년 이상 학교를 보내지 않고 기다리면서까지 한국을 근무지로 택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 생활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국 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활정보 자료가 거의 개발돼 있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원론적 수준이어서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가 아니다. 따라서 직장동료나 다른 외국인으로부터 구전으로 정보를 얻거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직접 경험을 해봐야 하는 불편이 있다. 이에 반해 싱가포르나 홍콩은 거의 미국 수준으로 영어로 의사교환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중국도 점차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보다 불리한 나라는 일본 정도가 될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도 큰 문제라고 본다. 외국인이 누리는 혜택과 복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문제는 동남아나 중국 어디에 가든지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불편한 나라에 굳이 와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 마케팅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다. 풍부한 고급 인력, 앞선 기술력 그리고 각종 투자 및 행사 유치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덜 알려져 있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연구소나 이벤트 등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잘 성사되지 않는 것도 국가 이미지가 결정에 주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세계 경제규모 12권을 다투고 있으면서도 국가적 인지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은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의 인력들을 끌어들일 만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나라다. 외국인들이 일하고 싶고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기본적인 인프라를 보강하고 지속적인 국가홍보를 통해 이미지를 제고시킨다면 투자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국민이 뜻을 모아 국가의 노력에 동참할 때 한국은 외국인을 위한 환경이 잘 갖춰진 나라로 이미지가 개선돼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동북아의 중심지로 향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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