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을 기준으로 세계 주요 문화콘텐츠 시장의 10.6%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문화콘텐츠산업 대국이다.
일본 소프트뱅크리서치 추정자료 및 노무라종합연구소를 비롯한 주요 업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일본의 주요 문화콘텐츠 시장은 애니메이션·캐릭터 1497억엔, 만화 4721억엔, 음악 1만7082억엔, 게임 1만6297억엔, 모바일콘텐츠 1470억엔, 인터넷콘텐츠 285억엔 등 총 4만1352억엔에 달했다. 달러화로는 320억8000만달러로 40억6000만달러 정도에 불과한 한국의 8배에 이르는 규모다. 표참조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산업은 세계 TV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게임산업도 세계 2위 규모다. 비디오게임 및 아케이드게임 부문에서는 세계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와 유사한 환경을 갖고 있는 일본이 이처럼 세계적인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현지 관계자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꼽는 일본 문화콘텐츠산업의 강점은 바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만화출판산업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다. 만화를 통해 작품성과 인기를 검증받은 작품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으로 제작,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만화는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쳐 작품의 내용을 정하고 여기에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 탄탄하면서도 독창적인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이 최대의 강점으로 인정받으면서 전체 출판물 가운데 38%, 전체 출판물 매출액의 22%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만화라고하면 어린이용이라고만 생각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청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독차층을 확대, 만화를 영화와 비슷한 지위의 산업으로 성장·발전시켰다. 성인용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막고 있는 국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처럼 활발한 출판만화 생산과 수요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소설, 드라마 등으로 각색하면서 일본 문화콘텐츠산업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기무라 일본만화학원장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90%는 만화에서 태어난다”며 “만화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TV 애니메이션화하고 이어 캐릭터상품 및 비디오, 영화, 게임, 모바일 콘텐츠, 광고 등 2·3차 작품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을 밟으면서 자연스럽게 ‘원소스멀티유즈’를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들 문화콘텐츠산업 부문간 밀접한 연계속에서 각각의 산업분야가 상호발전하는 ‘원소스멀티유즈’를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다. 작품 기획단계에서부터 상품성을 따져 가능성이 높은 작품만을 골라내고 투자설명회를 통해 협력업체를 모집하는 것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도 유사하다.
일본의 문화콘텐츠산업도 철저하게 민간 베이스에서 움직인다는 점도 할리우드 비즈니스식 엔테테인먼트 산업으로 대별되는 미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일본도 정도와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은 상업논리인 것이다.
이 같은 상업논리를 바탕으로 만화나 동화책 등 출판물에서 캐릭터가 창출, 그 가운데 유망한 작품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용 캐릭터로 발전하고 또다시 캐릭터 상품으로 재탄생해 빛을 보고 있다. 우리에게도 친근한 ‘우주소년 아톰’이나 ‘울트라맨’ ‘포켓몬스터’ ‘디지몬’ 등의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의 무국적성을 지향하는 것을 비롯해 제작기법과 캐릭터의 설정 등의 부문에서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독자적인 기법과 스타일을 완성해 이른바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일본 문화콘텐츠 작품에 일본만의 그 무엇인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일본의 또다른 강점은 국민들이 콘텐츠를 사서 즐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데 있다. 유료화 마인드가 정착돼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도 렌털용 소프트웨어 시장은 있다. 그렇지만 만화에서부터 캐릭터상품 및 인터넷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저작권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어 콘텐츠 제작자나 제공자에게 이익이 환원되고 이는 또다시 새로운 창작활동으로 이어지는 호순환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협회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시장에서도 자국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히로자네 일본 경제산업성 문화정보관련 산업과장은 “해외에서의 일본제 콘텐츠 판매를 늘리기 위해서는 불법복제와 같은 보급 저해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이를 위해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단체와 연계해 주변 각국의 관련 주무기관과 공동회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문화콘텐츠산업 지원
일본에서 문화콘텐츠산업 지원업무는 경제산업성, 총무성 그리고 문화과학성 등이 맡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문화콘텐츠산업 전반에 관한 지원 및 연구를 담당하고 있으며 주로 문화정보산업과(미디어콘텐츠과)에서 맡고 있다. 문화정보산업과는 크게 문화콘텐츠산업 지원과 콘텐츠제작 지원사업으로 나눠 펼치고 있다.
문화콘텐츠산업 지원을 위해 문화정보산업과는 지난 2001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월 1회 이상 ‘콘텐츠 유통촉진 검토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저작권자, 제작자, 유통사업자, 학자들이 참석해 콘텐츠의 불법복제 방지 및 불법사용에 대한 대책 그리고 합법적인 콘텐츠 유통의 확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 회의를 통해 ‘콘텐츠산업 해외유통 촉진기구(가칭)’를 발족했다. 이 기구는 일본 업체들의 원활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 아시아 전체의 콘텐츠산업 발전을 위한 개선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해외진출을 위한 저작권 제도의 확립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나타내며 아울러 자금조달환경의 정비와 관련해 ‘콘텐츠 평가방법의 확립” ‘제작과정의 투명화’ ‘원활한 자금조달을 저해하는 각종 법제도의 개선’ ‘정책자금 활용’ 등의 방안을 마련해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산업 연구회’를 설치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비즈니스를 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콘텐츠제작 지원을 위해서도 지난해부터 7억엔(약 70억원)을 투입, 기반기술의 개발 및 브로드밴드 콘텐츠 유통테스트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콘텐츠 제작에 관련된 단체, 기업 및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디지털콘텐츠 시장의 창출 및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콘텐츠의 제작이나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을 공모해 지원하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 인큐베이트형 콘텐츠제작 지원사업을 진행하는데 이 사업은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극장용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공모해 지원하는 것이다. 콘텐츠제작 기반기술의 개발업무는 재단법인 디지털콘텐츠협회가 담당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이 문화콘텐츠산업 전반에 대해 지원한다면 총무성은 브로드밴드, 콘텐츠제작 및 유통의 촉진부분에 주력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의 정보통신정책국 정보통신정책과가 이 업무를 맡고 있으며 지난해 책정된 예산은 25억8900만엔이었다. 총무성에서는 문화콘텐츠 저작권을 명시할 수 있는 틀, 브로드밴드·콘텐츠 유통기술, 교육용 콘텐츠 유통을 촉진할 수 있는 플랫폼 등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문화과학성은 인재 육성과 창작활동 지원, 문화예술품 보존 등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산하의 문화청이 진행하고 있다. 문화청은 미디어콘텐츠의 진흥을 위해 지난해에만 6억100만엔을 투입해 컴퓨터그래픽, 게임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등의 창작에 대한 자금지원을 펼치고 있다. 또한 미디어예술제를 개최해 미디어콘텐츠의 대중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화청은 아울러 현대뿐만 아니라 전통 문화예술작품 등을 최첨단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문화디지털라이브러리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도쿄=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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