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기 광주·전남테크노파크 원장 moon@gjtp.or.kr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산업사회에서 지방경제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중앙정부가 거의 모든 지방산업정책을 직접 입안·시행하고 지방정부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를 집행하는데 그침으로써 지역의 현실을 반영한 특색있는 산업정책을 기대할 수 없었다. 또 산업단지는 단지조성이라는 하드웨어적 측면에만 집착한 나머지 입주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기업유치라는 소프트웨어를 소홀히 해 용지공급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기존의 자본과 노동을 근간으로 한 가격경쟁력에서 정보와 지식을 근간으로 한 기술경쟁력으로 바뀌면서 정부의 지방산업정책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정책입안 과정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역의 현실을 반영한 특색있는 산업정책이 시행되고 대기업보다는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통한 능동적이고도 신속한 대응이, 산업단지와 같은 물리적 집적화보다는 경제주체간 협력적 네트워크가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혁신주체의 본래 역할까지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각 주체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요구받을 뿐이다. 모든 혁신주체들이 정보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술개발의 선순환 구축을 통한 지방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각 주체의 역량을 집적화하고 연결하는 새로운 조정자(coordinator)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업기술단지지원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테크노파크(TP)를 설립했다. TP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대리인(agency)으로서 지방 산업정책의 입안·시행에 참여함은 물론 혁신주체간 협력적 네트워크의 형성, 기술개발의 선순환 구축, 연구개발(R&D) 투자의 효율성 증진을 목표로 하는 지역혁신시스템(RIS) 구축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범TP는 1단계 사업기간(98년 12월∼2003년 8월)중 지역적 특성에 맞는 단지조성사업을 시행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물리적 하부구조(HW)를 구축하는 한편 산·학·연 기술혁신 프로그램을 충실히 수행하여 지역내 기술혁신주체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다만 TP가 명실상부한 지역혁신시스템의 주체로서 제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몇가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첫째, TP사업이 장기사업임을 이해하고 단계적인 추진전략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 TP사업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유럽의 경우 정착까지 최소 10년이 소요되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시범TP의 1단계 조성기간이 끝나면 법적·제도적 정비와 혁신주체간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정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이어 TP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단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의 수립·추진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기술혁신체제에서의 TP의 위상 확립을 위한 실질적이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예컨대 TP에 지역기술혁신사업자 선정기능을 확대 부여하고 TP를 통해 지역기술혁신 관련 예산을 지원한다면 R&D 투자의 효율성 제고와 함께 지역기술혁신의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이다.
셋째, TP를 전국적으로 확충하여 국가혁신시스템(NIS) 완성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활용해야 한다. 현재 시범TP가 조성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TP 조성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혁신시스템의 주체로서 TP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달 출범하는 새 정부는 ‘지방 분권화’를 중요한 국가경영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어 지방중심의 경제활동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방중심의 경제활동에서 추진될 새로운 지방산업정책은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방분권화의 목적이 지방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면, 경쟁력 강화의 핵심은 기술혁신이며, 기술혁신 클러스터의 중심에 TP가 있다. TP가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대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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