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차세대 신기술 규격제정과 공동으로 라이선스를 징수하려는 라이선스 풀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으나 한국은 세계적인 IT강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이 분야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신기술은 차세대 시장을 주도할 전망이어서 해당분야에 대한 라이선스가 없을 경우 특허료 부담이 갈수록 가중돼 국내 산업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우려가 매우 높다.
◇거세지는 특허료 요구=국내 통신업계는 퀄컴의 특허료 요구로 비싼 대가를 치렀다. 이번에는 GSM 특허료 요구가 잇따라 쇄도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MPEG4 비주얼과 오디오 특허료 징수가 시작될 예정이다. 3G 서비스 도입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어 이 분야 특허료도 조만간 물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가전업계의 IEEE1394 특허료도 조만간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차세대 유망제품에 대해서는 모두 상당액의 특허료가 붙는다. 이 분야에 별다른 특허권 없이 생산에만 치우쳐 있는 국내업계는 특허료 부담에 짓눌리게 될 전망이다.
국내업계는 지난 90년대 초 PC수출이 폭증하면서 호황을 구가하던 컴퓨터업계가 IBM의 특허공세로 하루아침에 무너진 경험이 있다. 하지만 차세대 컨버전스 제품에서도 이같은 전철을 되밟을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현실이다.
◇특허료 부담 얼마나 되나=MPEGLA가 관리하는 MPEG2의 경우 디코더와 인코더에 각각 대당 2.5달러를 내야 한다. 둘 다 쓸 경우 5달러에 달한다. 또 MPEG4 비주얼의 경우에는 디코더와 인코더에 각각 0.25달러가 매겨져 있다. 둘 다 채용할 경우 0.5달러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5.1채널 이상 오디오가 일반화되면서 MPEG4 오디오의 특허료까지 내야 한다. 분기별 생산량에 따라 특허료는 약간씩 조정되지만 오디오의 경우 디코더 채널당 0.5달러다. 따라서 5.1채널 디코더를 채용할 경우 대당 2.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또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한 스트리밍 기능을 제공할 경우 역시 디코더 채널당 0.52달러를 내야 한다.
IEEE1394의 경우에도 포트당 0.25달러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한다. 3G의 경우에는 현재도 너무 높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퀄컴의 CDMA 특허료나 10%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GSM 관련 특허료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허풀 가입 얼마나 돼있나=국내업체들의 특허풀 가입은 IT강국이라는 말을 무색케 할 정도로 형편없다. MPEG2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몇군데가 특허권자로 가입돼있다. 그러나 MPEG4 비주얼로 넘어오면서 삼성전자와 팬택&큐리텔 단 두군데다. MPEG4 오디오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ETRI가 가입돼 있다. 국내업계와 연구소가 세계적인 업체들과 어깨를 겨룰 만한 해당 분야 핵심기술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허풀 활동 참여도마저 미약=핵심기술이 없어 멤버로 가입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상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보교류를 위해 이들 활동에 참여하는 것조차 형편없다. 삼성전자, LG전자, ETRI 등만 각종 특허풀의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뿐이다. 참여도 저조는 공동규격 제정에서 국내기술이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술표준원의 한 관계자는 “해외기업들은 특허풀 구성과 공동규격 제정시 입장반영을 위해 매우 공격적인 활동을 펼치는 반면 국내기업들은 너무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비용을 지불하며 업계나 연구소 관계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뿐일 정도다.
◇방어책은 있나=지재권 획득을 위한 공격책이 취약한 만큼 방어책은 필수다. 그러나 한국은 방어책에서마저도 기업간, 또는 기업과 정부의 입장차이로 허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민간의 일이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대기업들은 우리일은 알아서 하겠다는 쪽이다. 중소기업들은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만 바라고 있을 뿐 능동적인 대응책 마련을 회피하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정부가 지재권에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한 협상시스템 구축에 적극 나서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산자부·정통부·과기부 등 정부 관계자들은 “로열티 협상에 정부가 관여하면 WTO나 미국 등과 통상마찰 우려가 있다”며 대책마련이나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기업도 “로열티에 관한 사항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라며 “업체의 이해를 최대한 반영해야 하는 로열티 문제는 아무리 국내기업이라 하더라도 정보교환은 어렵다”며 공동대응을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지재권협회 장수덕 부회장은 “노하우와 힘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전문가를 내세워 공동협상을 벌이는 게 보다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서로 눈치만 살피며 동참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재권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정부는 통상마찰을 구실로 골치아픈 로열티 문제를 회피하려 하고 대기업은 사익에만 급급하다”며 “공동 협상창구를 만들어 협상력을 높이려 하지 않는 중소기업들도 문제지만 중국처럼 지재권을 개별적인 이해를 떠나 국익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의식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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