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현지시각) 댈러스에서 열렸던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USA) 회장단 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6명의 회원들이 회의장(페어몬트호텔) 앞에서 “H-1B 비자 할당량을 축소하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특히 시위대 속에는 지난해 IEEE-USA 회장을 지낸 르얼 비르안트<사진 왼쪽>도 포함돼 큰 관심을 끌었다.
EE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정보기술(IT) 관련업계에 H-1B 비자 발급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H-1B는 미국이 해외에서 전문인력을 초빙할 때 최대 6년까지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특별 비자다. 미국은 지난 2000년 IT 등 분야에서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했을 때 H-1B 비자 발급한도를 6만5000명에서 19만5000명으로 한꺼번에 세 배나 늘렸다.
그러나 그후 IT업계가 최악의 불황을 겪으면서 실업자가 급증하자 다시 H-1B 비자 발급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 IT업계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학회인 IEEE-USA가 바로 그 진원지다.
현재 H-1B 비자로 미국 IT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엔지니어는 약 29만 명으로 추산된다.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숫자만큼 미국 엔지니어들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컴퓨터 과학자 및 프로그래머 중 실업자는 12만명을 기록했다.
또 외국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미국 엔지니어들이 대부분 회원이라는 점에서 IEEE-USA의 고민이 있다. 르얼 비르안트 IEEE-USA 전 회장도 “30여년 만에 가장 고통스러운 실업자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털어놓는 것을 보면 최근 미국 하이테크 업계를 엄습하고 있는 실업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마침내 IEEE-USA가 ‘H-1B 비자 축소’를 들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IEEE-USA는 최근 회장단 회의에서 “미국 하이테크 업계의 마지막 보루인 엔지니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오는 9월 국회에서 정하는 H-1B 비자 발급한도를 현재 19만5000명에서 다시 2000명년 이전 수준, 즉 6만50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23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미국 IT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IEEE-USA의 ‘H-1B 비자 축소’ 결의는 즉각 외국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IT기업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미국 IT관련 업체들의 최대 이익단체인 정보기술산업협회(ITAA http://www.itaa.org)가 그 선봉에 섰다. ITAA 해리스 밀러 회장<사진 오른쪽>은 “최근 미국 IT업계가 외국에서 수혈한 우수한 엔지니어들 손에 의해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H-1B 비자 발급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논쟁을 바라보는 외국 프로그래머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새너제이 머큐리뉴스에 따르면 서니베일에 있는 컴퓨터회사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인도 프로그래머 아빅 사르카(25)는 “2001년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왔는데 H-1B 비자 쿼터가 축소되면 언제까지 체류할 수 있을지 몰라 최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에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월 평균 3000∼4000달러의 보수를 받아 상당한 저축을 했는데 최근 미국에서도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1000달러 밖에 받지 못해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희망은 오는 9월 미국 국회가 H-1B 비자 발급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결정을 하는 것. 그러나 현재 그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머큐리뉴스는 분석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사진설명
르얼 비르안트 IEEE-USA 전 회장 “H-1B 비자 축소 불가피”
해리스 밀러 ITAA 회장 “있을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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