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 경북대 교수·한국전략경영학회장 antonio@knu.ac.kr
우리는 한동안 벤처기업의 눈부신 성공과 대박신화에 찬사와 부러움을 보냈다. 하지만 요즘은 창업 실패와 부도, 그리고 벤처스타들의 잇따른 추락에 실망과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벤처 실패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벤처가 실패하게 되는 수많은 원인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으로 분류된다.
첫째, 계획성과 합리성의 부족이다. 경험 없는 신생 창업기업들이 보이는 가장 흔한 실패요인이다. 주먹구구식 의사결정과 치밀하지 못한 사전계획 때문에 거의 잡은 기회를 놓치거나 잡았다손 치더라도 엉성한 자금관리로 흑자도산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시장의 변화다. 아무리 우수한 제품을 팔고 있더라도 시장이 거부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적 변화라 하더라도 기업은 생존을 위한 위기대처 능력을 가져야 한다.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 속에서 실패한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은 자기 전공과 관련성이 적은 분야에서 시장세분화를 하지 않고 과도한 마케팅 투자를 강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시장대응에 미숙했다는 것이다.
셋째, 확장의 유혹이다. 이는 성급한 성장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공한 벤처기업일수록 쉽게 빠질 수 있는 실패요인이기도 하다. 핵심역량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 전략적 구심력을 흐트러뜨리고 궁극적으로 기존의 경쟁우위를 잃는 우를 범하게 된다. 더군다나 급속 성장을 추구하는 벤처의 경우 잘못된 기업문화를 만들어낼 위험이 매우 높다. 예를 들자면 초기 성공에 도취해 과욕을 부리는 ‘돈키호테’식 문화를 잉태하거나 자만과 교만으로 ‘우물 안 개구리’식 문화에 빠질 수 있다. 이는 심지어 내부 분열을 일으키고 ‘사공 많은 배’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패요인들을 극복하며 장수하는 벤처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최근 동료 교수들과 함께 ‘벤처기업의 조직문화’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창업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기존의 사업관행이나 조직문화를 닮아 가려는 타성을 경계하고 잘못된 문화를 잉태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초심을 지켜나갈 때 강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위험·고성과’가 본질적 속성인 벤처는 실패를 항상 옆에 두고 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지금의 벤처산업 침체는 결코 양적으로 많은 벤처기업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실패의 종류에 있다. 즉 창업자의 부도덕성과 비윤리적 경영에 따른 연이은 실패가 한국 벤처산업에 ‘정체성(identity) 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태동기 벤처성장의 과정을 보면 기업 내적으로 ‘회사와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좋은 기업’을 만들어보자는 공감대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바람 에너지를 무섭게 창출해 낼 수 있었다. 또한 외적으로는 ‘족벌경영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신선하고 도덕적인 기업조직의 등장’이라는 사회적 기대감이 ‘사회적 정당성(social legitimacy)’과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내는 데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의 ‘부도덕한’ 실패는 벤처산업이 지금껏 누려온 공감대를 무너뜨림으로써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야기시키고 있다.
벤처 실패와 관련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벤처기업들이 성장과정에서 초심을 망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태동기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회사와 종업원이 함께 성장하는 좋은 기업 만들기’를 초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아사일체의 문화’ ‘자율적 업무수행의 문화’ ‘혁신 및 도전 추구의 문화’라는 독특한 조직문화를 형성해 왔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벤처기업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야만 앞에서 언급한 실패요인들을 극복하며 장수할 수 있다. 그러한 문화적 에너지는 새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가의 비전 달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는 벤처를 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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