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제부·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
대규모 수출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주식을 샀는데 불과 몇 달 만에 계약이 해지됐답니다.”
“이제는 회사가 대규모 제품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하더라도 액면 그대로 믿기가 어렵습니다.”
불과 몇 달 전 대규모 공급계약을 발표한 후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하는 ‘양치기 기업’이 적지 않다. 코스닥증권시장의 조사에 따르면 몇백억대의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밝힌 후 공급계약이 해지됐다고 재공시한 코스닥 IT기업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만 15개사였다. 계약금 전부가 취소됐다고 말한 기업은 6개였으며 계약금 가운데 일부만 해지됐다고 밝힌 나머지 기업도 모두 당초 계약금의 10%도 납품하지 못했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공급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다. 문제는 공급계약과 해지로 투자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공시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은 불과 몇 달 만에 계약이 해지됐다는 설명만을 듣고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 회사는 공급계약 발표 후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이 주식을 매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허위로 공급계약을 발표하고 주가가 올랐을 때 자신의 주식을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회사는 부도 며칠 전에 대규모 공급계약을 공시해 주가가 급등한 일도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공급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지만 일부 기업은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며 “피해는 투자자가 고스란히 안게 되며 건전한 투자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급계약 해지에도 기업들은 공시 의무만 가질 뿐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행 규정에서는 공급계약이 해지된 것 자체로는 별다른 페널티가 없다. 이상매매나 대주주의 주식매각 등 불공정거래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양치기 기업’들은 면죄부를 받는 셈이다.
시장에 대한 신뢰가 쌓이려면 상품이 좋아야 한다. 주식시장도 투자자들로부터 긍정적인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식시장의 상품인 기업들이 깨끗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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