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거물`의 퇴진

◆국제부·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최근 미국 인터넷부문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거물급 인사가 퇴진 의사를 밝혔다. 백악관 컴퓨터 보안담당 리처드 클라크 보좌관이 주인공으로 퇴임의 변이 한층 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클라크 보좌관은 미국과 한국 등 세계 인터넷 통신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 해킹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1년간 3명의 대통령을 보좌했고 국방부와 국무부 생활을 포함해 30여년간 미 정부에서 일했다. 특히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이버테러대책을 총괄해왔다. 이렇듯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인터넷 마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뻔한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인터넷 마비사태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우리나라에서 책임질 인사 하나 없이 면피에 급급한 사실은 책임소재 여부를 떠나 씁쓸하기 그지없다.

 미국이라고 해서 인터넷 마비사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외에도 일부 대학에서 피해사례를 속속 보고했다. 물론 우리나라에 비하면 경미해 규모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을 사이버보안 분야에 종사해온, 이 부문의 미국 최고 인사가 책임을 지겠노라고 공언한 것이다.

 클라크는 “인터넷 시스템은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해커들의 공격에 대해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후임자들에게 조언해주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 마비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서로 “나만큼은 무죄”라고 공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습책은 물론 향후 대책도 중구난방이다.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초고속인터넷만 확산되면 뭐하겠는가. 책임자들의 마인드는 다이얼업 수준을 못벗어나는 데”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초고속인터넷은 ‘IT대국’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단순한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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