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지리원, 수치지도 유통체계 바뀌어야

 수치지도 저작권과 관련한 분쟁이 매년 한건씩 불거지면서 GIS업계에 수치지도 유통체계와 관련 법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수치지도 도용 시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걸맞지 않은 각종 법규와 제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쟁이 가열된 것은 지난해 대우정밀과 팅크웨어가 수치지도 저작권 침해 여부를 놓고 시비를 가린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현대오토넷과 모빌콤이 유사한 공방에 휘말리면서부터다. 본지 1월 17일자 7면

 이에 앞서 지난 2001년에도 넥스텔과 지오스테크놀로지 역시 저작권 논쟁을 벌인 바 있다. GIS업계에서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저작권 분쟁의 원인을 비현실적인 현행 수치지도 유통체계와 국립지리원의 데이터베이스 노후화 등에서 찾고 있다.

 ◇탈법, 범법 조장하는 유통체계=우선 국립지리원이 판매하는 수치지도의 구매 과정이 까다롭고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 지적된다. 현행 법규 상으로는 응용지도나 지도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는 업체는 국립지리원이 제작한 원도(기본 수치지도)를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한 예로 중소업체인 A사가 최근 의뢰한 5000분의1 축척 도엽 하나의 가격은 2만1000원 가량. 여기에 이 원도를 이용한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다시 3만원이 추가 부담된다. 국립지리원이 관할하는 측량협회나 성과심사기관 등에 수수료 명목으로 돌아가는 비용이다. 수치지도 사용 전 의무적으로 성과심사를 받아야 하는 측량법 조항 때문이다. 전국 도면을 구입할 경우를 가정하면 대략 2억4000만∼3억원의 구매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다수 중소업체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비용이다.

 업계 관계자는 “축척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법규 상에 명시된 가격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이 법규를 엄격히 적용하면 중·고등학생용 노트 뒷장에 인쇄된 대한민국전도도 모두 무단 복제물로 법에 저촉된다”고 말했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이처럼 크다 보니 자금사정이 취약한 중소업체들은 수치지도를 이미 보유한 다른 회사로부터 사용권을 빌려 쓰는 형태로 지도를 복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0여개가 넘는 GIS업체 가운데 국립지리원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수치지도를 구입한 업체는 범아·대우정밀·만도맵앤소프트 등 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업체들은 이들 업체로부터 지도를 재구입하거나 재구입한 업체로부터 다시 구입하는 일이 보편화돼 있다.

 국립지리원도 이 같은 관행을 묵인해오고 있다. 법의 잣대를 모든 업체들에 에누리없이 적용했을 때의 결과가 어떨지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무시한 원칙이 스스로 탈법, 범법을 조장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구입지도 따로, 제작지도 따로=차량 내비게이션시스템 개발로 지난해 80억원의 매출을 올린 B사는 시스템에 내장하는 지도 제작비용에만 지난해 30억원을 투자했다. 원칙적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지도는 국립지리원의 원도를 기본 골격으로 삼게 돼 있지만 이 회사는 직접 조사를 거쳐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도를 자체제작해 사용한다. 국립지리원의 수치지도가 97년에 제작된 것이어서 현재 도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차상 제작비와는 별도로 비용을 들여 국립지리원 원도를 구입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의 노후화, 정확도 문제도 탈법을 조장하는 고질적인 병폐로 거론된다. 민간기업의 수치지도 업그레이드 주기는 평균 1년. 그러나 국립지리원은 5년 단위로 지도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따라서 원도를 구입한 업체들은 해마다 비용을 들여 오래된 데이터를 수정·보완해야 한다. 정확도가 더욱 요구되는 차량 내비게이션용 지도의 경우에는 도로가 만들어지고 신호체계가 바뀔 때마다 몇 개월에 한번씩 꾸준히 지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편차가 워낙 크다 보니 일부 업체들은 국립지리원이 제작한 원도를 구입하고 이와 별도로 직접 조사를 거쳐 자사 상품에 필요한 지도를 제작하고 있다. 결국 지도의 구매나 소유 개념보다는 라이선스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법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는 쓰지 않을 지도를 사용료를 지불하고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해결 방안=전문가들은 이같은 폐단을 없애고 수치지도 보급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국립지리원이 독점하고 있는 수치지도 판매권을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국립지리원이 민간 유통기관을 선정, 판매를 일임하고 수치지도 제작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치지도 구입비용도 현실에 맞게 재조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GIS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본 수치지도를 보다 많은 업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과감히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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