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IT과제](13)타성적인 행정의 개혁

 “5년 전에 거론된 문제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관련 부처가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냐.”

 노무현 당선자가 지난 21일 경제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정토론회에서 이같이 질타했다. 책임지고 일을 해결하지 않으려는 공직사회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데 공직사회만큼은 ‘무풍지대’다. 개혁을 화두로 내건 새정부인지라 관료집단의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일손 놓은 공직사회=대선을 앞둔 지난해말이었다. 세종로와 과천의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상당수가 일손을 놓았다. 간단한 업무보고용 자료만 만들고 나면 소설을 읽거나 외국어 공부에 몰두하기 일쑤다. 예산을 따오는 일을 맡은 일부 공무원만 바쁘다.

 “지금 뭘 하려고 해도 새정부가 들어서면 바뀔 수 있는데 굳이 일할 필요가 있나요. 일단 누가 대통령이 되나 보고 나도 늦지 않습니다.”

 한 경제부처의 과장은 이렇게 솔직히 고백했다. 일면 이해할 수 있다. 새정권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선거전에 ‘노는’ 한두달 동안에 민간기업들은 정부가 정책을 시행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또 일부 중대한 정책이라면 몰라도 간단한 정책까지 정권교체의 영향을 받는다면 정책의 일관성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변화를 못따라가는 관료집단=시대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보수적인 관료사회의 속성상 늘 사회나 산업이 달라진 다음에 정책이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너무나 뒤처져 있다.

 지난해 인터넷을 통한 선거활동을 봉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집에 하나씩 초고속인터넷이 깔려 있을 정도로 인터넷에 친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법과 선관위는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정책에 비해 선진적이라는 IT정책도 마찬가지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추세는 벌써 몇년 전부터 나온 분석인데도 방송규제와 통신규제는 여전히 따로따로 놀고 있다. 방송위와 정보통신부 등으로 흩어진 규제기관을 통합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되풀이될 뿐 해당 부처와 기관은 구체적인 법·제도 정비와 실무작업을 좀처럼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보다 인터넷보급이 떨어진 영국은 인터넷시대에 맞게 방송과 인터넷 등을 통합 법령으로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번 생기면 없애기 힘든 관료제에다 공무원의 타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공무원들이 당위성에 맞게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자기 조직이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방어논리를 개발하는 데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보사회에 맞게 규제 달라져야=정보사회에 들어서면서 정부의 각종 규제와 정책도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능동적이고도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규제에 산업사회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모든 정보를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규제의 기준과 결정과정은 여전히 비공개로 이뤄진다. 정책당국과 산업계, 소비자의 상호작용(인터랙티브)을 통한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행정학자들은 “지금까지 정부 규제 자체에 대한 논쟁은 있었으나 정작 중요한 정부부처의 업무 프로세스와 규제방법에 대한 논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서둘러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IT는 정부개혁의 핵심=국민의 정부에 이어 노무현 당선자측도 정부 규제를 완화하면서 정부 업무를 간소화할 방침이다. 행정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공공관리 이념으로 해석한다. 요체는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효율성 확보가 목적이다. 이에 따라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와 참여할 권리, 민주주의 원리, 정부의 효율성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 정부도 행정절차법, 부패방지법, 규제개혁기본법 등 관련 법을 만들고 전자정부도 추진했다. 공무원 조직은 근본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업무를 만들고 조직을 키우려는 경향이 있는데 전자정부의 추진을 통해 부분적인 억제효과도 있었다. 4000여종의 민원업무 중 10% 정도가 인터넷민원 신청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민원신청이 아니라 최종적인 처리까지 돼야 하며 나머지 민원도 대부분 전자적으로 처리돼야 한다. 문제는 공무원 조직의 대응이 부족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규제의 권한과 같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보화 전략도 단순히 기존 업무에 정보화를 도구로 도입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무를 가장 최선의 프로세스로 만든 뒤 이를 정보화’하는 접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업무재혁신작업(BPR)이다. 이는 새정권이 정부조직개편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산업사회는 정보사회로 바뀌었고 산업경제는 지식과 인터넷 기반 경제로 전환됐다. 행정 역시 정보사회와 인터넷경제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모든 중앙 정부부처는 관할 법령이 정보사회와 지식기반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적합한가 아닌가를 추려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 다음에 법과 제도를 개혁하고 필요할 경우 조직도 개편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부처와 공무원들은 이러한 개혁작업에 대해 새 당선자의 지시 이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강요된 선택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도움주신 분들>

 김석주 선문대 교수, 김영삼 동의대 교수, 성희준 이화여대 교수, 안문석 고려대 교수, 이승모 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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