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8일, 주요 외신들은 세계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컴퓨터어소시에이츠(CA)가 40세의 젊은 경영인을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타전했다. 샌제이 쿠마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서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스리랑카 출신이라는 점에 업계 관계자들은 더 놀랐다. 14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26년만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만으로도 업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그를 PC시장 침체와 회사의 분식회계 의혹, 경영권 갈등 등을 돌파하고 CA의 도약을 이뤄내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 쿠마르 회장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세계 정보기술(IT)업계 미래를 전망하고 CA의 전략에 대해 들어본다.
―늦게나마 찰스 왕의 후임으로 회장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올 한해 세계 IT산업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올해 세계 IT업계 종사자들의 당면 현안은 경기침체 하에서 즉각적인 투자효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IT 관리자들은 무수히 많은 신기술과 기존의 기술들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자사의 수익성을 개선하는데 가장 효과적일지 판단해야 한다. 신규 투자에 대해 정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투자를 통해 발생한 수익효과를 입증하고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기존 시스템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1∼2년 동안 세계 IT경기가 부진에 빠지면서 언제 경기가 회복될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2003년 후반 경에는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리라고 보고 있다. 설사 경제 회복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은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다. 이유는 사업 성장과 운영비 절감 사이에서 어느 쪽이든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IT경기의 전반적인 위축으로 한국 역시 경기가 좋지 않다. 한국 IT산업에 대해 조언해달라.
▲아시아 시장, 특히 한국은 하드웨어 측면에서 훌륭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하드웨어 인프라로부터 비즈니스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한다. 한국 업계 종사자들은 기술통합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통합은 이제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한국의 기업들도 통합이라는 흐름을 수용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로 대화의 초점을 맞춰보자. 각오가 남다를텐데 올 한해 CA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상해달라.
▲CA의 전략은 너무나 분명하다. 고객과 주주들에게 최상의 가치를 제공해 회사의 성장을 이어가고 앞으로도 계속 업계 선두의 위치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최고의 기술을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동시에 고객들이 기술 솔루션에 대한 투자를 비즈니스 요구의 변화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라이선스 조건을 제시할 예정이다. 지난 2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어온 IT시장 요구에 CA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IT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CA는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힘을 많이 소모했다. 또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회계조사 등으로 기업 이미지 손상과 주가 하락으로 고전하기도 했다. 이를 만회할 방안은.
▲CA는 관계 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를 가시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표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재 CA는 ‘디렉터 오브 코퍼레이트 거버넌스(Director of Corporate Governance)’를 두고 있는 몇 안되는 회사 가운데 하나며 이사진의 교체도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신속하고 투명하게 재무 정보를 공시하고 있다. 즉, CA의 기업 회계가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더 이상의 M&A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향후 기술 보강은 R&D에만 주력하는 것인가. 올해 어느 정도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가.
▲CA는 핵심사업 분야의 유기적 성장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 거의 3년 동안 대규모의 기업 인수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주주들이 주인인 주식회사에서 누구도 “절대로 안한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대규모 인수합병이 CA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전사적 관리, 보안, 스토리지, 포털, BI(Business Intelligence), 애플리케이션 라이프사이클 관리 등의 주력 분야에서 고객들의 성공을 지원하는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강력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 브랜드 유닛을 통해 R&D 효율을 크게 높였는데 올해 R&D 투자는 2002 회계연도와 비슷한 6억8000만달러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구체적인 솔루션이나 제품 로드맵을 말해달라.
▲CA는 리눅스용 인프라 관리 솔루션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술 분야에서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리눅스용 인프라 관리 솔루션 분야에서는 다양한 리눅스 환경을 지원하는 50가지 이상의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CA는 리눅스의 가치와 안정성 및 보급 확대로 멀지않아 리눅스가 전세계 고객들의 전략적인 플랫폼으로 자리잡게 되리라 믿고 있다. 또 무선분야 역시 핵심기술 영역 가운데 하나로 보고 CA는 전세계의 기업들을 위한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무선 인터넷을 만들기 위해 R&D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회사 자원은 물론 사업 파트너의 정보와 애플리케이션 자원까지 십분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에 있어 웹 서비스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닷넷(.NET) 및 J2EE 플랫폼에서 구축되는 웹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리하며 보안을 설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한 지 2년여가 되어 가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에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변경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CA의 성과나 고객의 성과는 어떤 것이 있는가.
▲2000년 10월 CA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모델은 CA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라이선스 기간을 월 단위, 혹은 기타의 단기간 계약 단위를 기준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판매모델에 비해 비용 효율성은 크게 높이고 고객의 위험 부담은 낮춰준다. CA는 사업 운영방식의 주요 부문으로 자리잡은 이 솔루션 판매방식을 ‘선택형 라이선스(FlexSelect Licensing)’라 명명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향후 10년 이내에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가 이와 같은 판매 방식을 따르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변 얘기를 하겠다. 경영철학은.
▲사업철학은 단순하다. 모든 상호작용에서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보면 그밖의 모든 문제들, 이를테면 최고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성공 지향의 기업 문화를 구축하는 것, 품질 및 혁신에 대한 열정을 기르고 이를 고객들에게 알리는 것,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팀이 되어 협력하는 것 등의 문제는 모두 저절로 해결되게 마련이다. 이런 사업 철학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은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이런 방식은 항상 성공한다.
―CEO가 안됐다면 무엇이 됐을지 상상할 수 있는가.
▲IT분야에 종사하기 전에는 의학도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전공 과목은 확실치 않지만 IT분야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지금쯤 PDA를 아주 잘 사용하는 의사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출생해 14세 때 미국으로 이민왔는데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세계 유수 IT기업의 CEO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CEO나 혹은 다른 어떤 형태의 비즈니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보다는 기회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 기회가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항상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또 항상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노력하며 자신의 목표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샌제이 쿠마르는 누구인가
쿠마르 CA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7년 UCCEL이라는 텍사스의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던 중 CA가 UCCEL을 합병하면서 CA에 합류했다. 입사 초기부터 CA의 공동설립자이자 전 회장인 찰스 왕 명예회장에 눈에 띈 쿠마르 회장은 이후 개발, 전략기획 및 운영 등 핵심 요직을 거쳐 94년 CA의 사장 겸 COO, 이어 2000년 8월에는 CEO로 임명돼 CA를 사실상 운영해 왔으며, 지난해 11월 드디어 CA에 입사한 지 15년만에 세계 3위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CA의 명실상부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62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소수 민족인 타밀족 출신으로 태어난 쿠마르 회장은 14세 때인 76년 가족과 함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로 이주했다. 쿠마르 회장은 축산학 연구자였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인내와 관용의 가치를 배웠으며 몬테소리 학교 관리자였던 어머니로부터는 근면함과 리더십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학창 시절 쿠마르 회장은 의과대학을 중도에 그만둘 정도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했고 17세에 가까운 친구와 재고관리 회사를 설립해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친구가 3년 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후 그는 회사를 정리하고 UCCEL에 입사, 근무하던 중 이 회사가 CA에 인수됨에 따라 CA의 직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찰스 왕과 샌제이 쿠마르의 오랜 파트너십이 시작되었다.
샌제이 쿠마르 회장은 월가로부터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왕 명예회장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는 갖고 있지 않지만 뛰어난 시장 상황 판단과 기민한 의사결정 능력 그리고 유연성과 파트너십에 입각한 기업 경영을 추구한다는 것이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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