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는 올해 초부터 주요 시장조사 업체들이 곧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잇따라 내놓았으나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경기 부진에 허덕였다.
시장조사업체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판매 규모는 1553억5000만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같은 규모는 작년대비 31.9% 감소한 지난해에 비해 1.5% 늘어나는데 그치는 것이다. 또 앞서 가트너 데이터퀘스트도 올해 반도체 시장이 작년보다 1.4% 늘어난 1554억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는데 여기서 D램을 제외할 경우 올해 반도체 판매 규모는 오히려 2% 줄어드는 것이다.
이같이 반도체 시장의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9·11 테러에 이어 제2의 걸프전 발발에 대한 우려 등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반도체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PC 수요가 실종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전반적인 반도체 업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회복기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이 지역의 반도체 판매 규모는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557억달러로 유일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판매 실적은 91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대비 무려 49.5%나 성장해 인텔에 이은 2위의 반도체 업체로 부상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위를 기록했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말 시장 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가 45개 주요 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발표한 내년도 투자전망 순위에서도 26억달러로 2위를 차지한 바 있는데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인수에 실패함에 따라 당분간 독주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이 아태 지역이 호조를 보인 것은 이 지역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D램 시장 덕분이다. 가트너 데이터퀘스트는 올해 D램 판매 규모가 162억달러에 달해 지난해 118억6000만달러에 비해 37%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 가트너의 애널리스트인 앤드루 노어우드는 “지난해는 비참한 한 해였다”며 “그나마 올해 PC 판매가 다소 늘어나 D램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내년 상반기에 공급과잉에 따른 일시적인 가격 인하 압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시장에 비해 반도체 장비 업계는 더욱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전세계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의 판매 규모는 올해 189억달러에 달해 지난해 280억달러에 비해 무려 32%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희망적인 점은 인텔, AMD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4분기 실적이 다소 개선된 것으로 추산되며 누적재고 소진과 컬러 휴대폰 등의 수요 증가로 인해 플래시 메모리 등 일부 제품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텔은 최근 아시아 지역이 높은 판매 실적을 보이고 있고 마이프로프로세서 수요도 늘고 있다는 점을 들어 4분기 매출이 68억∼7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매출 전망치를 밝혔다. 이같은 수치는 이전 전망치인 65억∼69억달러보다 상향 조정된 것으로 톰슨퍼스트콜은 인텔이 67억4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또 AMD도 4분기 매출액이 지난 3분기보다 35% 늘어난 7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AMD측은 이에 대해 고가의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와 플래시 메모리 판매가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고 추수감사절 쇼핑 시즌의 PC 매출도 증가해 매출이 당초 예상한 20%보다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 인텔이 내년 1월부터 플래시 메모리 가격을 20∼40% 인상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AMD와 일본의 후지쯔, 샤프 등도 30∼40% 플래시 가격을 인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극심한 부진을 보인 반도체 경기가 최근에 바닥을 쳤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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