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수 디지털경제부 차장 ksjang@etnews.co.kr
한해를 마감하면서 올해 한국사회를 관통한 문화코드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지난 여름 전국민을 월드컵의 열기로 몰아넣으며 새로운 응원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은 ‘붉은 악마’는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문화코드로 우리 자신은 물론 전체 지구촌 사람들에게 뜨거운 감명과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붉은 악마는 대선 구도와 맞물리면서 그 행보가 주목받기도 했지만 결국 순수한 축구동호인의 모임이라는 자신들의 본분을 자각, 올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가치있는 문화코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붉은 악마라는 문화코드는 진정한 축제가 무엇인지를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인식하게 해줬다.
붉은 악마라는 문화코드가 한여름 한국사회를 용광로 처럼 달궜다면 ‘촛불’과 ‘인터넷’이란 문화코드는 사람들의 뇌리에 또다른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촉발된 ‘촛불’ 시위와 대선기간에 한국사회의 주류로 떠오른 ‘인터넷’ 세대의 열정과 참여의식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또다른 문화코드다. 그 둘은 이질적이면서도 서로 맞닿아 있다.
기존 관념대로라면 촛불과 인터넷은 아주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 이제 굳이 애쓰지 않는다면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촛불은 일상생활과 격리돼 있다. 굳이 촛불이 아니라도 도시는 네온사인과 형광등·수은등 등 온갖 불빛으로 휘황찬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어둠을 밝히고 촛농이 없어질 때까지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촛불의 본성은 훼손되지 않고 있다. 촛불은 다른 촛불의 존재를 인정할 때만이 비로소 생명력의 정수인 ‘불꽃’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교훈으로 다가온다.
촛불과 달리 인터넷은 이제 우리 주변에 항시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더이상 그 커다란 우산 아래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인터넷은 이미 우리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머지않아 제2의 무선인터넷 붐이 일면 우리는 인터넷의 마수에서 단 한 뼘도 달아나지 못할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인터넷이란 문화코드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이번 대선기간에 인터넷이 중심이 된 선거운동과 토론문화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젊은 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연대의식을 키워나가고 토론의 장을 가꿔나갔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호흡하고 사고한다. 또 인터넷을 통해 기성세대를 질타하고 새로운 변화를 갈망한다. 부지불식간에 세상은 그렇게 변해버렸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올해 우리는 ‘촛불’과 ‘인터넷’이 조우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시위 현장에 화염병 대신 촛불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광장으로 나아가게 만든 촉매제가 바로 인터넷이었다. 촛불 시위를 처음으로 제창한 곳이 바로 인터넷이고 그곳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띠를 형성했다. 정보화 혁명이란 게 결국 이런 것이란 자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화 혁명이 앞으로 우리를 어디로 몰고 갈지 현재로서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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