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49)정초마다 나오는 로봇세상

 또 한해가 지나간다. 사람들은 이맘 때면 새로 맞이하는 365일이 순탄하길 기원하며 서로 덕담을 나눈다. 주식이 올랐으면, 신규사업이 대박을 터뜨리길, 새해엔 회사형편이 좀 풀리기를….

 월드컵 4강에서 대선의 역전드라마까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뤄낸 한국인이 2003년, 양띠해에 거는 기대와 희망은 어느 때보다 크다.

 새로운 정치체제가 윤곽을 드러냄에 따라 이번 정초에 회자될 덕담도 두루뭉실한 ‘모두 부∼자되세요’류에서 탈피해 세대별, 계층별로 한층 세분화될 전망이다.

 각종 언론매체도 연초에는 대중에게 희망을 주는 덕담성 기사로 온통 채워진다. 해마다 정초에 발행되는 신문이 가장 두툼한 것도 독자들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주고자 머리를 쥐어짜는 담당기자들의 숨은 노력이 지면마다 넘치기 때문이다.

 이맘 때가 되면 각 신문의 과학기술면은 새해에는 기술천국, 테크노피아가 다가온다는 식으로 지면구성이 엇비슷해진다. 이처럼 첨단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미래사회를 묘사할 때 항시 단골로 등장하는 존재가 로봇이다. ‘앞으론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온갖 힘든 일을 대신해주는 멋진 세상이 온다. 여길 보라. 로봇청소기가 이미 수입되지 않았는가.’ 과학기술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설득하는데 이보다 쉽고도 효과적인 메시지도 없다. 실제로 각 신문에 연중 게재되는 로봇기사를 보면 신년특집호에 집중되는 경향이 주기적으로 드러난다. 출출할 때 찬장에 숨겨둔 라면 한 봉지처럼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은 과학면을 꾸미는데 매우 요긴한 아이템인 것이다.

 아이가 우유를 엎질러도 로봇청소기가 금세 닦아준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로봇이 밥상을 차리고 간호도 해주고 군대도 대신 가준단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조금만 더 살아보자.

 정초마다 나오는 이런 덕담성 로봇기사는 일상에 찌든 독자들에게 불확실하나마 노동해방이란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희망을 주는 것도 좋지만 로봇세상이 점차 가시화되는 현 시점에서 로봇기사를 대하는 언론계 시각도 달라질 필요성이 제기된다.

 적어도 우리 국민의 98%는 로봇을 실제로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다. 대중이 아는 로봇지식이란 언론매체를 통해서 주입된 가공의 이미지가 전부다. 사람들에게 로봇이란 그저 TV,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신기한 물건일 뿐 아직까지 옳고 그른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이같은 로봇관의 부재현상은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에 큰 원인이 있다. 얼마전 다음과 같은 외신기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로봇정찰기로 수백km 밖에서 테러범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로봇정찰기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최근 군사용 로봇의 발전은 정말 대단하다.’ 모든 로봇기술을 단순히 신기한 구경거리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보도방식이다. 그 로봇비행기가 머지않아 한반도 북녘을 넘나들며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말이다. 이미 로봇은 중립적인 과학기술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로봇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국내 언론계도 독자들에게 적절한 가치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야할 시점이 왔다.

 새해가 되면 로봇세상은 우리 곁에 갑자기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많다.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덜어주는 가정용 로봇이 인기를 끌지 혹은 북한의 핵시설 인근에서 미군 로봇정찰기가 격추돼 한반도를 긴장국면으로 몰고 갈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언론계도 로봇기술에 대해 보다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점이다.

 번잡한 연말연시가 지나가면 다시 일상의 공허함이 반복된다. 정초마다 등장하는 로봇세상의 꿈은 대부분 내년 이맘때로 다시 유보된다. 과연 우리는 로봇세상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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