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스-디지털 시대의 엘리트/데이비드 브룩스 지음/동방미디어 펴냄
산업사회 또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끌어간 쌍두마차 중 하나는 넥타이부대인 화이트칼라였다. 넥타이부대는 산업사회의 첨병이자 수출전선의 주력군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21세기의 정보시대에는 ‘샐러리맨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사무능력과 행정능력을 발휘하는 관리자의 지위가 축소되는 반면에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계급인 ‘골드칼라’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디지털시대의 엘리트‘는 정보시대의 새로운 지배 엘리트인 골드칼라의 등장 과정과 문화 및 생활 양식을 세밀하면서도 재치있는 문체로 그려낸 화제작이다. 이 작품에 따르면 산업시대에는 부르주아 주도의 자본주의 문화와 보헤미안의 반문화를 구분하는 것이 쉬웠다. 부르주아는 정장을 입고 대기업에서 일했으며 교회에 다녔다. 반면에 보헤미안은 자유분방한 예술가와 지식인이었다. 또 보헤미안은 해방을 부르짖었던 60년대의 히피 가치를 옹호했던 데 비해 부르주아는 사업적인 80년대의 여피였다. 부르주아가 사업과 시장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면 보헤미안은 예술과 감성의 세계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하지만 정보화와 디지털화가 촉발한 자본주의의 대변혁은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양자의 특성이 한데 어우러진 새로운 지배 엘리트층을 창출했다. 미국 사회의 주류로 부상한 새로운 엘리트집단은 부르주아의 야망과 성공에 대한 집착, 보헤미안의 방랑과 저항, 창조성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들은 한쪽 발은 창의성의 보헤미안 세상에 있고 다른쪽 발은 야망과 세속적 성공의 부르주아 영토에 있는 보헤미안 부르주아인 ‘보보스’였던 것이다.
보보들은 부르주아의 야망과 합리성, 그리고 보헤미안적 자유와 상상력을 조화시킴으로써 부르주아 주류 문화의 가치와 60년대 반문화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또 이들은 디지털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의 제조자이자 기존 질서를 부수는 전위부대로 활동했으며 자신의 의도대로 상징을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문화권력으로 자리를 굳혔다. 보보들에게 비즈니스는 단순히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편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보보들의 이같은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문은 소비영역이다. 기존의 부르주아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전형적인 소비계급은 ‘유한계급’이다. 유한계급은 시간과 노동의 비생산적·과시적인 소비 혹은 낭비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재부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 소유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특히 사람들의 눈에 띌 만한 화려한 과시적 소비를 일삼음으로써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회적 명성을 유지하고 금전적 긍지를 누리고자 한다.
이에 비해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엘리트 보보들은 무차별적인 재산의 축적을 경원시하고 대신에 문명화를 중요시한다. 그들은 돈을 쓰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이 속물이 아닌 의식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고자 애쓴다. 또한 과시적인 소비는 지양하지만 자기계발이나 실용적인 곳에는 일반인들이 엄두조차 못내는 액수의 돈을 소비한다. 책의 곳곳에서 자신도 보보의 일원임을 밝히고 있는 브룩스는 이들이 주도하는 디지털사회의 미래를 낙관한다. 이들이야말로 지금까지 인간이 성취한 개인의 자유나 오늘날 회복추세에 있는 친밀한 권위의 유대감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언가 통합적인 정치감각, 국가적인 단결의 감각을 재건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way21@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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