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새 대통령에 바란다

 전자신문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직후인 지난 20일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정근모 호서대학교 총장(전 과학기술처 장관)과 배순훈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전 정보통신부 장관)를 만나 새 정부의 출범 의미와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 들어보는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두 원로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안정보다는 변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결정”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변화는 그만큼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새 대통령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위기관리능력을 배양하고 21세기에 걸맞은 국가운영혁신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근모 호서대 총장=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국민들은 제16대 대통령으로 변화와 개혁을 선택한 것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기존 시스템,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 국민이 노 대통령 당선자를 선택하면서 앞으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노 당선자가 일반적인 예측을 달리하고 승리를 거둬왔으며 앞으로 새 정부 또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순훈 과학기술원 교수=새 대통령 당선자가 변화를 상징한다는 것에 동감합니다. 변화라는 것은 불확실성을 수반합니다. 과거에는 선형적인 시스템을 중시해 하나의 변수로 미래를 예측했으나 이제는 복합적인 변화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위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노 당선자가 적임자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변화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위험은 성공하면 보상이 많아지지만 실패할 가능성 또한 큽니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변화를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것, 이것이 노 당선자에게 요구되는 최우선과제일 것입니다.

 ◇정 총장=20세기를 분석의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모든 것이 뒤섞인 ‘퓨전’ 즉, 융합의 시대입니다. 모든 시스템을 이해해야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퓨전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깊은 전문성간의 혼합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고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 교수=어떤 분야를 잘 알 때와 모를 때 두가지 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대해 잘 알고 분석자료가 많을 때 성공 가능성이 큽니다. 위기관리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정 총장=새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으로 우리나라도 혁신과 변화에 대해 문호가 열린 것입니다. 새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도록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국가 운영에 대해 혁신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반대세력이 생겨나 어려움만 겪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배 교수=우선 정부 스스로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정부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그렇지만 모험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조직 또한 이를 원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정년퇴직까지 무사하게 마친 것을 큰 영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우수한 자질을 갖춘 공무원들 스스로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로 나라를 발전시켜가는 것이 바로 애국이며 명예입니다.

 ◇정 총장=맞습니다. 새 정부는 무엇보다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획기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합니다. 가급적이면 민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민간으로 이양해야 합니다. 작은 정부만이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 현재 제도적으로는 정부의 고위직에 민간전문가가 들어가 활동할 수 있도록 돼있지만 그동안 잘 운영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공무원 사회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그것을 배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인센티브시스템으로 운영되기보다는 잘못에 대해 벌을 주는 페널티시스템으로 운영돼왔던 것도 큰 원인이라는 생각입니다. 작은 정부와 인센티브제 등을 통해 정부와 공무원 사회에 변화를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배 교수= 김대중 대통령도 작은 정부를 말했지만 결국은 이루지 못한 과제입니다. 작은 정부가 되려면 일단 공무원수를 줄여야 합니다. 민영화 등을 통하면 공무원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공무원수를 줄이면 능력있는 공무원들은 민간에서 활동해 또 다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정 총장=장관 임면도 개선되야 합니다. 현재는 정부가 특정한 잘못에 대해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관행입니다. 장관 교체와 유임 중 어떤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인지 헤아리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간에서 공무원으로 자리를 바꾼 사람들은 대부분 봉사의 마음으로 자리를 맡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배 교수=김대중 정권의 최대 업적은 ‘정보화’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세계 22위였던 우리나라 정보화 수준을 5위로 끌어올리겠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김 대통령의 의지와 후임 장관들의 열정으로 한국이 IT강국으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동안 정부가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았다면 앞으로는 콘텐츠산업 활성화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정보고속도로 위에서 과학기술자와 과학기술과 관련된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개발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달릴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 총장=IT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은 시의적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IT는 앞으로 2년 안에 엄청난 변화를 맞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한다면 또 다시 세계 강국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IT보다 훨씬 광범위한 과학기술분야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됐다는 점입니다. 새 정부가 어떠한 이니셔티브를 쥐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킬지 관심입니다.

 ◇배 교수=앞서 말씀드린대로 IT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에 무엇을 달리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바로 과학기술입니다. 과학과 경제, 과학과 인문사회, 과학과 금융 등 모든 학문이 접목되는 융합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기술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것은 우리사회가 단순히 경제성을 앞세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의 한 연구원이 노벨상을 탄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즉 자기가 좋은 것을 하다보니 노벨상도 탈 수 있더라는 것이죠.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는 크게 우수한 능력을 갖춘 인재와 이를 받아들여주는 주위의 분위기, 그리고 우연성이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계획적으로 노벨상을 만드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죠. 여기서 저는 우연성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가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번 대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는 생각입니다.

 ◇정 총장=근본적으로 학문간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특정 학문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외도’로 비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래서는 퓨전 시대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물리학자가 금융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공학 전문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학문간의 대화는 말리지 말고 오히려 권유해야 합니다.

 또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문과·이과 구분을 폐지해야 합니다. 문·이과 구분 없이 기본적인 과학기술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유용한 과학기술교육이 필요합니다. 과학기술계 스스로도 자신들을 조그마한 울타리에 집어넣고 있다는 병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문이라는 이유로 벽을 쌓는 것은 퓨전시대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입니다.

 배 교수=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개혁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보사회가 되면서 사람들간의 네트워크가 중요시됩니다. 통신이 아니라 사람이 같이 사는 사회가 중요합니다. 새 정부는 자기의 이익을 지키되 세계가 합의할 수 있는 질서속에서 살수 있도록 ‘세계 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보고속도로를 기반으로 모든 사람이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경쟁력있는 몇몇 사람을 슈퍼스타 기술자로 키워서 모두가 먹고 사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사회구성원간에 공정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사회적으로 공정성이 확산되면 나머지 물리적인 문제들은 쉽게 풀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 총장=지난 85년부터 교육개혁을 말했지만 개혁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교육전문가들이 자신들이 보는 개혁만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입시제도만 매번 바뀐 것이지요. 외국에서는 대학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대학입학의 중요성만 강조됩니다. 정작 중요한 교육내용에 대한 개혁이 없었습니다. 또 지방자치제와 교육자치제를 연계해 중앙정부가 모든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기존의 관행은 던져버려야 합니다. 지역별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고 중용하는 것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토대로 한 교육개혁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배 교수=우리나라 제품 중에 세계 1등으로 꼽히는 것은 이동전화입니다. 이동전화가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는 이동전화를 음성 위주로 접근한 반면 우리나라는 데이터 통신을 중심으로 접근했습니다. 이것은 국내 소비자들이 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비자들이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단기적으로 기술자·기능인을 키울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민교육을 하는 것이 수출을 늘리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지름길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정 총장=노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들이 개혁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거처럼 단순히 제도에만 천착하는 개혁이 아닌 새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을 개발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당연히 국민들은 실망할 것입니다. 노 대통령 당선자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정리=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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