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과 문명(Carnage and Culture)/ 빅터 데이비스 핸슨 지음/ 푸른숲 펴냄
어릴 적부터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졌던 소박한 의문 중 하나는 불과 2000년 전만 해도 미개한 종족이었던 유럽인들이 어떻게 문명을 일으켜서 현재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나 하는 점이다. 지정학적 요소, 자원, 문화의 차이, 타고난 유전자 등 많은 설명을 접했지만 최근 번역된 ‘살육과 문명’이라는 책에서는 저자의 독특하면서도 예리한 시각으로 이에 대한 분석을 제시해 흥미롭다.
이 책은 인류 역사상 중요한 아홉개의 전투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살라미스·레판토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투도 다루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전투가 널리 알려진 전투는 아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아홉개의 전투, 공히 유럽국가들간의 전투가 아니라 서구 대 비서구의 구도에서 일어난 전투들의 사례며 이를 통해 서구문화의 특성을 추출하기 위한, 또한 지속적인 전쟁이 아니라 한 전투의 단면에 메스를 가함으로써 유럽의 군대가 비유럽 국가에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강력히 주장한다.
이 책이 학술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저자의 머리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여느 역사 대중서처럼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지은이는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저자가 생각하는 아홉 개의 전형적인 유럽 대 비유럽의 대결을 사례로 예시하며 유럽문화의 ‘치명성’을 부각시킨다. 저자 주장의 핵심은 서구의 군사적 우위가 일반인들이 널리 믿고 있는 것처럼 근대 이후의 과학발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기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출발한 오랜 전통(자유·민주주의·시민군)에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저자의 뛰어난 점은 흔히 전쟁을 다룰 때 개입되기 쉬운 도덕성·종교·문화 등의 측면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서구문명의 군사적인 치명성을 시원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 비유럽인이 보기에는 심정적으로 동의하기가 쉽지 않은 ‘절대적인 서구문화의 우월성’만이 강조되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다른 서구인들에 의해 쓰여진 저술들의 약자에 대한 옹호(비유럽 국가들의 문화적 우월성의 강조, 또는 서구의 제국적 침략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사실관계에 대한 논리적 설명의 모호함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저자의 시각을 통하면 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자원이 지천으로 널린 아스텍이 소수의 스페인군에 전멸했는지, 왜 규율이 느슨한 정보장교부대를 가진 미국이 추상 같은 규율과 앞선 무기체계를 가진 일본에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했는지 등에 대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전반적인 저자의 냉철한 분석속에서도 책 일부(특별히 베트남전쟁에 대한 시각)에서 보이는 이념적 한계는 이 책의 ‘옥의 티’ 중 하나로 지적될 수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특정 강대국에 대한 반감이 거의 극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약자의 전형적인 강자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을 극복하고 강자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약자에겐 꼭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특별히 시의 적절하게 읽어볼 만한 책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다.
<연세대 김영용 교수 y2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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