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43)검정고무신(2)

검정고무신을 만들기로 결심을 굳히자 이젠 원작자인 이영일씨(필명 도래미)와 이우영씨(스토리 작가)를 만나 원작 사용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다가왔다. 공동 투자자인 KBS 담당자와 작가들, 그리고 나 이렇게 삼자가 모여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지만 원작료 지급금액과 원작 이용기간 설정 등 모든 합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앞으로의 제작일정을 감안해 볼 때 방영시간 때문에 마음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영상물 원작료와 상품화 사업으로부터 나오는 수익금 배분조건을 원작자의 요구대로 받아들이고, 98년 10월 29일에 원작이용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국 이 문제가 원작자와 제작사간 수익금 해석에 대해 견해차이가 크게 발생하는 단초가 되는 바람에 상품화 사업에서 이를 재정립하느라 애를 먹게 되었다. 하여튼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그 다음날 KBS와 각각 50%씩 투자하여 설날특집 80분 애니메이션물로 만들기로 공동 제작계약을 체결하고 제작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제 프로덕션을 적시에 진행시켜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프리부터 포스트까지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4개월 남짓. 이토록 짧은시간에 80분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내야 한다니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그려내야 할 방향이 정립 되어있지 않은 상황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프리분야의 인력이 많지않던 시절이라서 시나리오를 각색할 작가를 확보하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족한 제작기간을 보완하기 위해 스토리보드는 직접 만들어 후선에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밤을 새우면서 옆에서 콘티 그려내기가 한달이 조금넘자 그런대로 콘티가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것은 순전히 원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캐릭터 디자인 작업, 배경 및 컬러 설정 작업 등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이 절감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그 다음 단계에서 발생했다. 레이아웃과 원화를 맡기로 한 스태프들의 적응기간이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작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잘 기획되어 있는 OEM에만 익숙해온 탓에 인디케이션이 생략된 국내물에 신속히 적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상당수의 컷이 원화단계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니 이를 어찌하랴.

 다시 레이아웃과 원화 스태프들을 불러모아야 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경제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계속돼온 OEM일에 젖어있는 탓에 동화매수 절감하는 일이 무딜 수밖에 없었고 가급적 레벨을 떼서 매수가 많이 들어가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높아질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일본보다 협소한 시장에서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가가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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