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하루에 수백만달러의 적자를 보는 한이 있어도 특허 획득에 돈을 쓰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새너제이의 소프트웨어 업체 케이던스디자인시스템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업체는 올 1∼9월 1600만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최근 3년간 연구개발(R&D) 예산은 특허출원 비용을 포함해 두배 이상이나 늘어났다. 휴렛패커드(HP)도 최근 분기 20억달러의 적자를 보았지만 지난 99년 이후 특허 출원을 두배로 늘리는 등 특허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이 같은 특허 중시 경향은 하이테크 산업에서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같은 침체기에는 경기회복기에 각광받을 신제품을 찾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호황기보다 오히려 특허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팰러앨토의 법무법인 카&퍼렐의 특허변호사 존 퍼렐은 “지금의 포화시장에서 특허없이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상어가 있는 물탱크에서 코피를 쏟으며 수영하는 것과 같다”며 특허기술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미 특허청에 따르면 90년대 말 하이테크 호황을 타고 미국의 특허출원수는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늘어나 98년 24만90건에서 올해 33만5418건으로 늘어났다. 반면 특허출원 증가율은 경기침체를 반영해 2000년 12%대에서 올해 3%대로 둔화됐다.
특허청 공보관 리처드 몰스비는 특허출원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바이오테크와 컴퓨터 소프트웨어라고 꼽았다.
사실 특허출원은 법적으로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HP의 특허변호사 마크 슐러는 특허출원 1건에 들어가는 비용이 1만달러 정도로 대부분 법적 수수료며 특허청의 특허 승인을 받는 비용은 최고 3만달러까지 늘어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실리콘그래픽스의 CEO인 밥 비숍은 “특허 비용이 무서워 R&D 투자를 소홀히 하는 기술업체는 거의 없다”며 “R&D에 투자하지 않고 특허권을 통해 R&D를 보호하지 않는 한 혁신을 유지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기업들은 비용절감만 앞세우다가 자칫 R&D 투자와 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지난달 44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술부서 감원은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게 한 사례다.
미래 시장을 확보하는 싸움에서 특허 자산은 ‘최대 무기’가 될 수 있다. 일례로 대표적인 IT 기업인 IBM은 전세계 각 국에 모두 3만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9년 연속 미 최다 특허 보유 기업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지난해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을 기반으로 15억달러가 넘는 라이선스 로열티 수입을 올렸다.
IBM 이외에 보유 특허가 많은 업체는 모토로라, 이스트먼코닥, 일본의 소니와 히타치 등을 꼽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하이테크 메카’로 정평이 나 있지만 미 특허청이 정식으로 통계를 낸 91년 이후 실리콘밸리 기업 중 연간 특허 획득 순위가 10위안에 드는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페르난데스 특허 변호사는 이에 대해 “경쟁도구로서 특허 자산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수 건의 특허만으로 100건의 특허와 같은 위력을 가질 수 있어 이런 양적인 접근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생업체는 특허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제품 공급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으로는 HP가 최초로 조만간 특허순위 10위안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HP연구소 홍보부장인 데이브 버만은 “우리 목표는 10위권 진입”이라며 “지난해에 컴팩과의 합병이 마무리됐다면 10위안에 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HP는 컴팩 합병으로 총 보유 특허가 1만7000건에 달하고 R&D 예산도 40억달러 가량으로 늘어났다.
HP는 지난해 특허 출원 978건으로 15위를 차지했으며 컴팩은 363건으로 43위에 올랐었다. 미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HP와 컴팩을 합치면 보유 특허 순위가 소니에 이어 8위로 올라서게 된다.
HP는 특허 자산 확대를 전략 목표로 삼고 있다. HP의 특허 변호사들은 회사내 과학자 및 기술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새 특허 제안을 검토하는 등 특허 늘리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 ‘발명 제안’이라는 양식을 이용해 특허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직원에게 장려금 175달러를 지급한다. 특허를 정식 출원하면 해당 발명자는 1750달러를 손에 쥔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특허부문에서는 IBM이 HP를 압도한다. 이 회사의 지적재산권 및 라이선싱 담당 부사장인 제리 로젠탈은 “우리는 방대한 특허자산을 보유하고 연간 50억달러의 R&D 예산을 쓰는 이외에 발명 1건당 최고 10만달러의 장려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퍼렐 특허 변호사는 “IBM은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특허를 중시한다”며 “IBM의 이런 태도를 본받는 하이테크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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