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장이라는 중국 베이징의 한 백화점 상가에는 이동전화단말기 메이커들의 경쟁이 뜨겁다. 모토로라, 노키아, 삼성전자, 지멘스… 각국의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일본 메이커의 제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또 다른 이동전화 상가에는 소니-에릭슨이 대형 조형물에 이벤트까지 시끌벅적하게 벌여놓고 열심히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매장진열대에서 소니-에릭슨을 찾는 것은 수월치 않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갖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일본업체로는 에릭슨과 손잡은 소니-에릭슨이 고작 1∼2%(GFK아시아 조사 2002년 8월)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유럽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세계 최고의 전자강국이라는 일본 업체들이 정작 이동전화 부문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일본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세계 표준을 따르지 않고 독자표준을 고집해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삼성전자 도쿄 현지직원은 “NTT도코모에만 1200만대의 단말기를 판매한 NEC가 해외실적은 형편없이 미미한 수준”이라며 “일본 이동전화 단말기의 해외진출이 미미한 것은 PHS(Personal Handyphone System)나 PDC(Personal Digital Cellular Telecommunication System)와 같은 독자표준에 맞춰 생산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일본이 해외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무선 인터넷과 사진메일 등 일본에서 성공한 서비스fmf 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진출에 이어 단말기 업체의 진출도 이어졌다. NEC, 샤프 등과 같은 일본 단말기 메이커들은 지난해부터 NTT도코모의 해외진출에 발맞춰 유럽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경기침체로 아직 바람몰이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전세계의 3세대(3G) 상용화 시대가 도래하면 상황은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비로소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WCDMA와 cdma2000 1x 세계 표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3G의 일본=“우리는 반드시 시작할 겁니다(We will launch it).’ J폰의 이마무라 미카 총괄부장은 올해안에 반드시 3G에 진입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마무라 총괄부장은 “포마와 같이 별도의 3G브랜드를 가져가지 않고 고객의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한다는 개념으로 3G에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cdma2000 1x부터 3G라고 정의하고 있는 KDDI는 1x서비스 시작 8개월만에 3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확보한 데 힘입어 cdma2000 1x EVDO 구축에 따른 본격적인 3G 서비스 시기를 내년으로 잡고 있다. WCDMA 세계 표준 3G서비스인 포마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NTT도코모에 KDDI와 J폰이 본격 가세하면 일본은 3G경쟁시대에 본격 진입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3G경쟁체제에 들어서는 셈이다. i모드 성공에 이은 사진메일의 확산, 동영상메일의 시도 등 무선인터넷의 대중화 경험이 축적돼 있어 ‘강력한 라이벌’인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섰다는 평이다. NTT도코모가 보유한 WCDMA 원천기술과 NEC, 미쓰비시, 소니 등 장비업체들이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100만화소급 카메라 장착을 눈앞에 두고 있는 카메라폰과 컬러폰 등 단말기 기술과 생산경험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3G를 먼저 경험하는 일본 단말기 사업자들은 개방형 표준에 따라 세계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맞게 된다. 90년대 후반 기술표준 차이로 유럽시장에서 실패하고, 이내 철수했던 NEC 등은 3G를 역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3G는 세계 공통의 표준이므로 생산자 입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 막대한 개발비도 합리적이라는 노골적인 분석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이나 미국의 사업자들은 3G사업을 미뤄놓은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과 한국시장에 주목하며 “최신 단말기 기능, 3G기술방식 등에 있어 유럽보다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승자로 아시아가 유럽을 대신해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열도를 벗어나 세계로=해외진출은 맏형 NTT도코모가 가장 활발하다. i모드가 대성공을 거둔 시점인 2000년부터 대만, 영국 등에 투자와 함께 i모드 무선인터넷과 3G 사업진출을 위한 포석을 깔아왔다. NTT도코모는 대만 KG텔레콤과 i모드 기반의 무선인터넷서비스 제공을 위해 조인트벤처 설립에 합의하고 21.43%의 지분을 획득했다. 미국의 AT&T와이어리스의 지분도 16%를 확보해 무선인터넷 진출을 꾀하고 있다. 영국의 허치슨과는 이 회사의 3G면허 획득과 함께 상호보조를 맞추기 위해 20%의 지분을 확보하고 유럽시장의 3G서비스와 i모드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KPN모바일을 통해서는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등에서 i모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허치슨홍콩, 브라질의 텔레수데스테 등을 포함해 총 1조8441억엔(18조4000억원)을 투자한 세계의 ‘큰 손’이자 무선인터넷, 3G 부문의 리더다.
NTT도코모의 막대한 투자는 투자손실을 빚어 올 상반기 수익이 95% 폭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남미 등지에서 i모드 서비스를 시작해 ‘i모드를 알리고 WCDMA를 글로벌 로밍을 지원하는 사실상의 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소기의 목적 달성은 착실한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NEC의 유럽시장 진출도 다시 시도되고 있다. NTT도코모 다카가와 게이지 사장은 “WCDMA로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WCDMA와 GSM의 듀얼모드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포마의 해외진출도 머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세계 28개국에서 2억1000만 가입자를 확보한 보다폰이 대주주(69.7%)인 J폰은 상황이 다소 다르지만 일본이 첨단기술과 신규서비스의 테스트베드고 일본 단말기업체들이 그 파트너인 점은 다르지 않다. 보다폰은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J폰의 샤메일 서비스를 유럽에 들고와 ‘보다폰 라이브’를 제공하면서 일본업체들의 장비로 시스템을 구성했으며 콘텐츠에서도 남코, 다이토 등 일본업체의 게임을 도입했다. J폰은 조만간 보다폰으로 브랜드를 통합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서 해외에 일본기술을 확산시키는 유력한 통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KDDI도 CDMA 무선인터넷 수출을 위해 중국 차이나유니콤과 협상을 벌이는 한편 도요타와 텔레매틱스를 공동개발해 이를 해외진출의 경로로 삼고 있다.
<일본 단말기 산업 동향>
일본의 무선인터넷과 3G부문의 해외수출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층이 두꺼운 이동전화단말기 업체들이다. 일본 단말기업체들도 치열한 경쟁속에 사진메일, 무선인터넷, GPS탑재 등 데이터 서비스의 고도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시장규모가 지난해 4500만대보다 300만대 가량 줄어든 420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신규 수요인 무선인터넷서비스에 대응한 모델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NEC는 대형 컬러화면과 브랜드 이미지 상승으로 파나소닉(마쓰시타)을 추월, 지난해 1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상반기 카메라를 탑재한 단말기 출하 지연으로 파나소닉에 재역전을 당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샤프다. 샤메일 단말기를 출시해 대박을 터뜨린 샤프는 3위로 뛰어오르며 ‘신분상승’을 했다. 샤프는 샤메일의 성공으로 콧대가 높은 NTT도코모의 러브콜을 받았다. NTT도코모 입성에 따라 올해에도 3위를 유지하면서 시장점유율을 13.8%까지 끌어올릴 전망이다.
일본 단말기 업체들의 경쟁은 당분간 카메라의 고화소화, 액정의 고화질화, 메모리의 대용량화를 놓고 벌어질 것으로 보이며 특히 카메라의 성능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요소로 꼽힌다. 또한 포마에 이은 3G서비스의 확산과 해외진출도 단말기 업체들의 입장에서는 최대 관심사다.
<국내 사업자의 일본진출>
“i모드의 성공으로 인해 자바탑재 단말기나 컬러폰, GPS기능, 사진메일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서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지에서 만난 삼성전자 관계자의 귀띔이다.
유럽과 중국의 이동전화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는 등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동전화도 일본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현지 영업관련 인력 중 반도체부문(90%)이 대부분이고 나머지 중 가전부문 등을 제외한 일부에 그치는 작은 인원만 운용하고 있다.
“신규 이동전화 모델 개발에 투입되는 자원이 한국의 3배 정도 든다고 봅니다. 그외에 매뉴얼 등 서류작업을 완벽히 해놓고 개발에 들어가는 일본과 다른 작업방식 등이 진출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후지쯔와 공동으로 KDDI에 cdma2000 기지국장비를 납품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한 이래 3G용 단말기 개발을 검토하는 등 물꼬가 트이고는 있지만 이동전화 단말기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국내기업들의 일본진출은 쉽지 않은 과제로 꼽힌다. 일본에 대한 정보통신부문의 수출실적도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4.8% 떨어진 28억6300만달러에 그쳤다. 교역대상 국가별 순위로도 지난해 2위에서 올해 1, 2위인 미국, 중국에 이어 3위인 홍콩보다 수출액수가 더 줄어들었다. 반면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를 유지해 무역불균형 우려도 제기된다.
도쿄 아이파크 네고로 하루히토 소장은 “국내 기업의 진출을 위해서는 양국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서로 차이나는 만큼 사업 단계마다 작은 변화에 대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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