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최문규·조현경 공저/영진닷컴 펴냄
-황한규 만도공조 사장(mmcceo@winia.co.kr)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살짝 데우면.
힘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을 수 있다. 꽁꽁 언 아이스크림에 플라스틱 숟가락을 부러뜨려 본 사람들, 숟가락이 들어간다 싶으면 어느새 녹아 물러진 아이스크림에 불평해본 사람들이라면 데운 숟가락의 즐거움을 실감한다. 전자레인지에 10초 동안 데워서 사용하는 이 숟가락은 아이스크림과 닿는 표면온도를 순간적으로 높여 언 아이스크림을 녹이는 간단한 물리학 원칙을 응용한 것이다.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은 이처럼 유쾌한 아이디어상품 100가지를 저자가 먼저 사용해본 다음 ‘이렇더라’며 이야기해준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 다듬어진 아이디어 한 꾸러미를 손에 쥐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상상력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단서를 제공해줄지언정 어디에나 호환 가능한 범용크리에이티브를 선물한다는 것은 애당초 저자의 의도가 아니다. 머리를 채워주는 것보다 머리를 비워주는 데서 이 책은 빛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밥과 같다. 필자는 김치냉장고에서 숙성시킨 김치의 맛을 테스트하는 자리를 매주 가지면서 밥의 미덕에 놀라게 된다. 달고·짜고·시고·쓰고·매운, 오미의 결정체인 김치는 밥과 어울리면서 맛이 구별되고 동시에 완성된다. 밥은 빛깔만 하얀 게 아니라 맛도 희다. 텅 빈 공간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돋보이게 한다. 새 밥을 한 술 떠먹으면 입안에는 다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흰 공간이 마련된다. 오첩반상, 칠첩반상 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음식들을 한 상에 올려 한꺼번에 맛보게 하는 우리의 음식문화에서는 맛의 경계를 짓는 밥의 역할이 돋보인다.
이처럼 밥은 입을 채워주는 역할뿐 아니라 입을 비우는 지우개 구실을 한다.
대부분의 세상일이 서양식 코스요리처럼 시간적 순차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음식처럼 다중성·동시성·통합성을 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순간순간 머리를 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기존정설·고정관념·아집의 벽이 높아가고 있을 때는 새로운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는 것이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이때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기술과 감성·디자인이 얼마나 자유분방하게 나아갈 수 있는지 귀띔해준다.
이 책에 손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저자가 그 자신에게 역할 부여한 ‘얼리어댑터’에 대한 매력 때문이다. 얼리어댑터에 대해 저자는 ‘새로운 제품이 나왔을 때 기능·디자인·출시 배경·역사·가격 등을 꼼꼼히 살펴 시장을 내다보고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기술의 보급(Diffusion of Innovation)’이란 책에서 에버렛 로저스(Everett M Rogers)가 이 개념을 처음 제시했을 때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양방향언어로 해석할 때 유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생산자에게서 소비자로 전달되는 과정에 얼리어댑터가 있듯 소비자에게서 생산자로 전달되는 과정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할 수 있다. 이때 얼리어댑터는 소비자의 욕구와 수요를 포착하려고 애쓰는 기술개발자·디자이너·마케터·경영자 등이 될 것이다. 범위를 넓히자면 부부·친구·이웃·직장동료 사이에서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리어댑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얼리어댑터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익히 들어온 진보와 보수의 대립항 외에 우리들에게 사회의 역동적 지향성을 제시하는 화두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나이와 지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말랑말랑하다. 많은 책이 가르치려는 의욕이 넘쳐서 읽는 이들을 민망하게 하는 데 반해 이 책의 저자는 얼리어댑터 1세대로서의 권위(?)를 뒷전에 접어둔 듯하다. 목에서 힘을 빼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결과 독자들은 별스런 아이디어들을 별스럽지 않게 뒤집어보는 소득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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