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언어 이대로 좋은가>전문가 좌담회

 본지는 지난 4일 문화관광부와 함께 556돌 한글날을 맞아 통신공간에서 무분별한 통신언어 오·남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말 훼손 현상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통신언어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본지 문화산업부 원철린 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김갑수 문화부 국어정책과장과 조오현 건국대 교수, 권재일 서울대 교수, 박동근 한글학회 연구원, 이민규 한글문화연대 사무국장, 이성우 전 유니텔동호회연합회장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략 처음에는 무조건 악영향만을 미친다며 부정적으로 보아왔던 통신언어에 대한 시각이 최근 들어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특히 통신언어를 10대들의 문화현상으로 받아들여 현실로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야할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통신언어의 개선방향이나 수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상이한 의견이 나왔다. 이날 좌담회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사회=원철린 전자신문 문화산업부장

 토론자=조오현 건국대 교수

  권재일 서울대 교수

  박동근 한글학회 연구원

  이민규 한글문화연대 사무국장

  이성우 전 유니텔동호회연합회장

  김갑수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장

 

 사회=대학시절 단어를 축약해서 약어를 써본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 이같은 현상이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통신언어 사용 추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성우 회장=어떤 사회나 모임이든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축약어나 언어가 있다. 하지만 통신언어는 인터넷에만 국한되지 않고 특정한 규정이나 약속없이 실생활에까지 파고들고 있어 방치해서는 안될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생활에도 통신언어가 일상어처럼 널리 쓰이면서 한글파괴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동근 연구원=이처럼 빠른 시간에 통신언어가 발달한 것은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미에 ‘ㅇ’을 붙여 귀여움을 나타내거나 ‘∼방’과 같은 말이나 접두어 ‘즐’ 등이 그것이다.

 권재일 교수=통신언어에 대해 처음에는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우리 언어를 파괴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이를 10대의 문화현상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오히려 언어학자나 전문가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색해야 할 때다. 부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새말을 만들고 어휘를 풍부하게 해주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하지만 이러한 통신언어 때문에 세대간 단절현상이 발생하거나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도 일어나고 있다.

 조오현 교수=학생들이 제대로 된 맞춤법을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인 책임이다. 사실 성인 가운데도 맞춤법을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대학생 가운데 주관식 답안지에 통신언어를 버젓이 쓰는 경우도 있다. 글이란 습관이 되면 고치기 힘들다. 어린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잘못된 표현을 즐겨 쓴다는 얘기는 미래 우리 언어의 모습이 어떠할지 보여주는 것이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규 국장=동감한다. 하지만 통신언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순기능도 있다.

 사회=그렇다면 통신언어는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모든 통신언어를 제도권 언어에 유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인데 언어생활에서 표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겠는가.

 박동근=통신언어에 대한 문제는 말에 관한 문제와 글에 관한 문제로 구분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리대로 적기를 일상언어로 쓴다고 해도 언어를 파괴하지 않지만 ‘있어욤’과 같은 문어체는 경우가 다르다. 구어인지 문어인지를 구분해서 써야할 것 같다. 특히 말 자체를 왜곡한 것이나 국적불명의 이른바 외계어는 제도권 진입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권재일=언어는 변화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많은 구성원들이 수용하면 포용이 된다. 세대에 국한하지 않고 유입되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신언어가 일상 언어 생활에 영향을 미치거나 혼동을 주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오현=통신언어에는 축약이나 합성·혼성 등을 통해 생성된 새로운 말이 많다. 그러나 통신언어라는 이름 하에 속어 또는 비어가 많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우리말을 거칠게 만들 뿐 아니라 문화적·정신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특히 외계문자나 잘못된 띄어쓰기의 경우 우리 언어를 피폐하게 만든다.

 사회=어차피 통신언어가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오히려 좋은 말을 개발해 사용토록 권장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통신언어의 오·남용을 어떻게 막고 또 이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권재일=통신언어는 법률이나 규범으로 정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단지 교육과 계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과거에도 학생들이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저속한 속어와 비속어를 써왔지만 성장하고 난 이후에는 쓰지 않는다. 통신언어도 환경만 바뀌었을 뿐 마찬가지다. 난리난 것처럼 접근하기 보다는 일단 현상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교 국어 교육과정에 문법교육을 강화하거나 시민단체 등이 나서 ‘바른 우리말 우리글 쓰기’ 캠페인을 벌이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민규=동의한다. 하지만 교육을 받은 정도에 따라 기본적인 언어환경이 크게 다른 것도 사실이다. 맞춤법을 모르는 초등학생이나 이제 서시히 배워가고 있는 중학생,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대학생 등 계층별로 서로 다른 접근방식이 요구된다. 특히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는 교육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그밖의 학생들에게는 반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두고 다양한 홍보 및 계몽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연예인들로 하여금 바른 통신언어 사용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케 하는 등의 이벤트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조오현=교육적인 차원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통신언어를 사용할 경우 점수를 감점하는 등의 조치만 취하더라도 크게 감소할 것이다. 난삽한 통신언어가 나오면 변환장치를 하던가 표시해주는 등 소프트웨어적인 대응도 생각해 볼 만하다. 읽는 사람이 불편하면 자연스럽게 그릇된 언어사용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술적인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동근=통신언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대화의 새로운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인지, 집단 내에서만 써야할 언어인지를 적절하게 가려 쓰는 문제다. 통신 내에서만 사용되도록 지도하고 계도해 나가야 한다.

 김갑수 과장=문화부에서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신언어에 대한 각성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주력해 다양한 비정규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실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몇달간 전반적인 통신언어 환경을 조사하고 준비해 왔다. 특히 현재는 인터넷 사이트에 공문을 보내 한글날을 계기로 이같은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통신언어가 고립된 언어는 아니다. 국어환경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리말 우리글을 올바로 사용하고 잘 쓰는 사람이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 개발을 위해 노력하겠다. 또 교육부와도 협력하고 민간단체 차원에서도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이도록 지원해 나가겠다. 인터넷에서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발적인 노력이 일고 있다. 이를 적극 지원해 올바른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

 <정리=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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