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월드]미국-통신시장 패권 겨냥 `인텔의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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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억달러를 건 도박(?)인가.’

 인텔은 지난 4년 동안 포화상태인 통신 반도체 시장 교두보 확보를 겨냥해 관련 기업 인수에 무려 100억달러를 퍼부었다. 이는 전과는 다른 방식의 전략으로 인텔은 이전까지는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부어 독자적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주력해왔다.

 이에 따라 불과 18개월 전에 새로 출범한 인텔의 커뮤니케이션스그룹은 30개 이상의 인수기업으로 짜여졌다. 이 그룹은 인수기업을 모태로 현재 세계 15개 도시에 직원 6000명 이상을 거느리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기업 인수를 총괄하는 인텔의 통신그룹 부사장 진 말로니는 “대대적인 베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실패하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통신 칩 시장 도전의지를 불살랐다.

 인텔은 30여 인수기업의 절반 정도 기업에 대한 인수가격은 비공개에 부쳤다. 따라서 인텔이 통신 칩 시장 진출을 목표로 기업 인수에 퍼부은 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공개된 액수만 103억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인텔이 앞으로 통신 반도체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인텔은 이더넷 카드용 반도체 시장에서 최정상 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이는 몇 년 전부터 제품을 생산해 축적한 기반이 있어 가능했다.

 시장조사회사 IDC의 애널리스트인 숀 래비는 “인텔은 수익률이 더 높은 네트워킹 인프라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부동의 1위 업체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인텔이 에이거시스템스, 어플라이드마이크로서키츠, PMC시에라, 비테스세미컨덕터 같은 업체를 따라 잡으려면 통신 칩 산업의 여러 분야에서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인텔의 커뮤니케이션스그룹은 이 회사의 장기 성장을 위해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인텔이 닷컴 호황기에 너무 비싸게 기업을 인수했다고 비판했다. 애리조나 템페의 시장조사업체 포워드컨셉츠의 애널리스트인 윌 스트라우스는 “인텔은 어리석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지불했다”고 꼬집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인수 업체는 기술력 등이 기대에 못 미치는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 사례가 1억3200만달러에 인수한 가상 사설 네트워킹 업체인 시바와 5억달러에 인수한 온라인 거래 가속 시스템 생산업체 i피봇이다.

 인텔의 홍보담당자인 대니얼 프란시스코는 이에 대해 두 기업의 보유기술 일부를 아직 이용하고 있으나 운영이 거의 중단됐다고 밝혔다.

 인텔이 21억4000만달러에 인수한 새크라멘토의 레벨원커뮤니케이션스도 초고속 통신 네트워킹 시스템을 위한 기가비트 이더넷 사업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스트라우스는 “레벨원의 중역 모두는 물론 기술진 대부분도 회사를 떠났다”고 전했다.

 일부 중역들은 레벨원 매각 후 이익만을 챙기고 회사를 떠났고 일부는 경쟁자에 의해 축출됐다. 이에 따라 인텔은 네트워킹 인프라 시스템을 위한 초고속 접속기술 개발에 계속 주력하는 한편 PC용 초고속 접속기술은 당분간 마벨테크놀로지그룹의 기술 라이선스를 얻어 쓰기로 했다.

 물론 성공한 사례도 있다. 지난 98년 5월 디지털이큅먼트(DEC)의 반도체 사업을 6억2500만달러에 인수한 게 대표 사례다. DEC의 인수는 인텔과 DEC 양사간 법적 분쟁 해결안의 하나로 이뤄졌다.

 인텔은 이 거래로 DEC의 ‘스트롱암’ 칩 설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인텔 와이어리스커뮤니케이션스 및 컴퓨팅 그룹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PDA와 휴대폰용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했다. DEC 기술을 이용한 인텔의 차세대 칩 ‘X스케일’도 인텔 통신그룹에서 이용하는 네트워크 프로세서 등 여러 가지 제품에 널리 응용되고 있다.

 인텔이 지난해 4월 4억달러에 인수한 광네트워킹 업체인 라이트로직도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배럿에게 직접 보고하는 12명의 중역 중 한사람인 말로니는 자사의 통신 반도체 사업 진출은 80년대 중반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을 위해 메모리칩 사업에 뛰어들었던 당시와 견줄 수 있는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자평했다.

 또 다른 과제는 시장여건이다. 대형 통신회사와 시스코시스템스 같은 네트워킹 장비 업체에 통신 제품을 판매하는 다른 통신 반도체 메이커들은 경기침체로 큰 타격을 받은 데다 아직 경기회복 징후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 잔고가 100억달러 이상인 인텔로서는 경쟁사의 이런 악재가 경쟁력 없는 업체를 퇴출시키고 반면 인텔은 원하는 대로 돈을 쓸 수 있어 시장 확대의 호기를 맞고 있다는 게 분석가들의 시각이다.

 그웬냅 분석가는 통신 칩 메이커 다수가 다른 사업을 축소하고 통신 칩에 재차 주력해야 할지 어려운 결정을 남겨놓고 있으나 인텔은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텔 커뮤니케이션스그룹은 인텔의 지난해 R&D 비용 38억달러 중 거의 3분의 1을 썼다. 올해에도 R&D 비용 40억달러의 3분의 1이 이 그룹에 배정된 상황이다.

 말로니 인텔 통신그룹 부사장은 “자금력이 풍부한 것은 좋으나 최종적으로는 제품의 질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며 “시장침체로 경쟁이 완화되고는 있으나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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