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위기의 실리콘밸리>(중)대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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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털 자금이 점차 말라가고 연구개발(R&D) 자금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드는 사태에 직면한 실리콘밸리는 할 말을 잃고 있다. 세계 IT의 중심지라던 자부심에 가득 차있던 실리콘밸리는 이제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미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2000년말 이래 실리콘밸리 지역은 11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지역 중심지인 샌타클래라의 경우 실업률이 미국 평균치를 상회하는 7.6%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대’라는 간판이 밸리 전역에서 흔한 풍경이 된 지금 빈 사무실이 야금야금 늘어나더니 공실률이 어느새 30%를 넘어서고 있다. 부지가 넓고 환경이 쾌적해 마치 대학의 캠퍼스를 연상케 하던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의 전경은 썰물을 만난 듯 썰렁하고 동시에 한때 빈틈 없이 꽉 찼던 주차장도 텅 비어가고 있다.

 작년 9월 파산보호 신청을 한 인터넷서비스업체(ISP) 익사이트앳홈이 한때 둥지를 틀었던 7층짜리 건물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아직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다. 실리콘밸리의 생명줄 역할을 했던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급전직하, 상반기중 벤처캐피털의 투자액이 작년동기보다 48%나 줄어들었다(PwC 자료).

 세계적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작년에도 올해 같은 경기침체(리세션)가 있었지만 실리콘밸리 톱30기업의 R&D 비용은 줄어들지 않고 작년보다 2.4% 증가한 212억달러를 기록했다”며 “하지만 결국 올 상반기에는 지난해 동기보다 5% 감소한 119억달러로 감소세로 돌아서고 말았다”고 우려했다.

 R&D 감소뿐 아니라 세계 IT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잭폿(jack pot)’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실리콘밸리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혁신의 계곡(innovation valley)’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지난 60여년 동안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온갖 어려움과 불황을 이겨내면서 세계 IT산업의 보루로 우뚝 서왔다. 즉 방위산업이 흥성한 60년대 전후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국방예산지출로 실리콘밸리의 기술인프라가 구축됐으며 이어 59년 집적회로가 발명되면서 반도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또 방위산업과 집적회로의 발전을 발판으로 마침내 80년대 개인용컴퓨터(PC) 물결을 이끌어냈다. 이어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의 국방예산이 삭감되고 세계적으로 반도체와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90년대초 잠시나마 미국경제의 성장속도가 느려져지면서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고전했으나 이내 인터넷이라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IT전성기를 다시 이끌어갔다. 표참조

 이처럼 실리콘밸리는 2차대전 이후 최소한 네차례에 걸친 신기술 혁명을 이루어내며 현재의 IT메카 명성을 구축했지만 지금은 반도체, PC, 인터넷 같은 이전의 히트작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 그나마 내년부터 시장이 열리기 시작할 웹서비스와 무선서비스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PC·인터넷 등에 비하면 ‘함량’이 떨어진다. 바이오와 나노기술 같은 업체들이 ‘큰 건’을 노리며 ‘칼’을 갈고 있지만 세계시장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미국 IT전문가들은 히트상품과 깜짝 기술을 내놓지 못해 세계 최고 기술단지라는 이름값이 퇴색해가고 있는 마당에 실리콘밸리가 미래 성장의 견인차인 R&D 비용마저 감소함에 따라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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