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로부터 종교적 열정이 넘쳐 흐르는 민족이었다.
유교, 불교, 기독교, 어떤 외래종교든 일단 이 땅에 들어오면 원산지보다 더 고유한 특성을 간직한 채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곤 했다. 종교란 모름지기 그 시대 사람들이 고민하는 세상사를 나름대로 논리로 설명할 수 있어야 세월이 변해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종교집단들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21세기 로봇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까.
사람을 쏙 빼닮은 지능형 로봇이 일상의 삶 속에 보급되면서 괜한 질시와 오해, 종교적 갈등을 빚지 않으려면 주요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로봇의 모습은 꼭 짚어볼 사안이라 생각된다. 혹자는 기계로봇에 무슨 종교적 해석이 필요하냐고 냉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로봇은 태생부터 인간을 흉내내고 대체하는 목적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자동차, TV같은 문명의 이기와는 그 사회적 의미가 다르다.
사람처럼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능형 로봇의 출현은 신과 인간, 자연으로 구성되는 고전적 종교관에 혼란을 유발하고 수년내 종교계에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를 전망이다. 당연히 일부 종교인들에게 첨단로봇은 사회적 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될 것이며 이같은 가능성은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종교가 지닌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과학기술계는 로봇기술에 대한 종교계의 비판적 견해를 겸허히 수용하는 한편 불필요한 편견과 오해를 씻어내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될 것이다.
우선 불교적 로봇관을 정리해보자.
“스님, 로봇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로봇이라…. 당연히 있지 않겠느냐.”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 만물에는 나름대로 불성이 존재한다. 인간과 주변 세계를 모두 동등한 차원의 피조물로 간주하는 불교적 세계관으로 볼 때 기계로봇 또한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머리카락 한 올이나 돌덩이에도 불성이 있다고 하신 부처님께서 하물며 로봇의 불성을 부정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불교에선 기계적 고안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空)에서 만들어진 색(色)의 일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로봇에 대해 우월적,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드물다. 불교전통이 강한 일본사회에서 사람들이 로봇을 친근하게 대하고 미국, 유럽보다 인간형 로봇 개발계획이 앞서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현재로선 불교계가 첨단로봇기술과 긴장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로봇과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 불교적 가치관은 21세기 로봇세상에 무난하지만 첨단 로봇기술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을 감안하면 보다 심도있는 불교계의 고민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앞으론 사찰의 불상도 미소짓는 지능형 로봇형태로 대체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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