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에 도전한다>(1)이동전화단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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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의 미래는 IT와의 승부라고 할 수 있다. 뒤쫓아가기 바빴던 산업사회와는 달리 우리는 지난 20여년간 디지털 IT산업에 일찌감치 눈 뜨고 정부와 민간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총력 체제를 가동해 왔다. 덕분에 세계 경제 패권을 가를 IT시장에서 한국은 기득권 세력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개별 제품이, 기업들이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라서는 일뿐이다. 1등만이 모든 것을 향유할 수 있는 IT시장에서 최강에 도전하는 우리 기업과 제품을 장기기획시리즈로 살펴본다. 현 세계 최강은 벤치마킹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겐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다. 편집자

요즘 세계 이동전화단말기업계의 화두는 단연 삼성전자다. 모토로라·지멘스·에릭슨 등 주요 메이저업체들마저 적자를 견디지 못해 사업을 접거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와중에도 삼성전자는 오히려 세계 시장점유율을 늘리며 ‘나홀로’ 독주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CDMA 단말기 시장을 장악하고 공격적으로 GSM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제 세계 최강 노키아마저 몰아부칠 태세다.

 스트래티지애널리스틱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에 1950만대의 단말기를 공급해 세계 시장점유율 10%를 기록, 지멘스를 제치고 빅3로 올라섰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20%가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수익성을 낼 수 있는 제조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데 하물며 현재 이동전화단말기 시장이 침체기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노키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노키아는 지난해 영역을 더욱 넓히면서 3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2위 업체인 모토로라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수익도 20%의 고마진을 기록했다. 노키아가 ‘철옹성’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고·중·저가의 다양한 제품군과 혁신적인 물류시스템을 통해 이동전화단말기산업의 최고 브랜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노키아는 다소 윈텔(제품력)과 닮았고 애플·델컴퓨터(물류)의 측면을 약간씩 지니고 있으면서 코카콜라(브랜드)와는 상당히 닮았다”고 평가한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인터브랜드는 올해의 100대 톱 브랜드 중 노키아를 6위에 랭크시켰다. 브랜드 가치는 무려 300억달러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42위로 64억달러로 평가됐다. 노키아는 지난 94년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코카콜라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을 장악하는 월가에서 잘 알려지면 그만큼 브랜드 및 매출이 증대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동전화단말기 시장이 신규 수요보다 교체 수요의 비중이 커질수록 브랜드 인지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노키아는 굳게 믿고 있다. 글로벌뉴스에 따르면 노키아 사용자 중 80∼90%가 미래에 단말기를 교체할 때 다시 노키아의 제품을 구매할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삼성전자는 하이엔드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노키아가 중·저가 시장에서 ‘골리앗’으로 성장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하이엔드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며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스페인의 비즈니스전문지(GQ)는 삼성전자의 이동전화단말기를 카르티에·루이뷔통과 같은 명품 반열에 올려 놓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초창기부터 폴더처럼 시장을 리드하는 제품과 철저한 차별화 전략으로 하이엔드 시장의 강자로 성장했다.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중·저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 튀면서도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제값을 받자는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노키아가 매년 10∼20개의 모델을 내놓지만 삼성전자는 60∼70개의 모델을 선보인다.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세계 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노키아는 델컴퓨터처럼 적시에 적절한 상품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물류시스템으로 유명하다. 노키아는 전세계 수백개 업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고 있지만 핵심부품은 5∼10개사로 국한시켜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노키아는 또 윈텔처럼 기술개발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 중·저가 시장에 주력하면서도 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결도 연구개발(R&D) 덕분이다. 노키아는 2000년 현재 핀란드·미국·중국 등 14개국에 52개의 R&D센터를 설치하고 전 직원의 30%에 해당하는 1만7000명을 연구부문에 할당했다. 노키아는 매년 매출의 8∼9%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거점에 R&D 및 생산기지를 설립하는 철저한 글로벌화 전략으로 생산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중앙집중식이다. 중국·브라질·스페인·멕시코 등 4개국에 5개의 생산공장을 두고 있지만 구미공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구미공장에서 3000만대, 해외에서 1000만대의 단말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IBM이나 HP 같은 세계적인 IT업체의 제품을 전문으로 외주생산하는 솔렉트론보다 구미공장의 생산성이 훨씬 높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정보통신부문 9400명 중 3600명(연구개발 2100명) 정도가 이동전화단말기 만드는 데 근무하고 있으며 관련 R&D 비용은 연간 3000억원 정도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이고 물류시스템을 개선해 중·저가 시장에 진출한다면 노키아의 벽을 넘어서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이는 삼성전자가 세계 이동전화단말기 시장에서 최강으로 성장하기 위해 시급해 보강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반면 노키아는 40% 언저리에서 시장점유율이 상한선에 다다른 만큼 단말기 가격을 높여야만 앞으로도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을 올리려면 소비자들이 새로운 단말기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도록 매력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다윗(삼성전자)과 골리앗(노키아)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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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스타일 비교

◆애니콜 신화 이기태 사장-완벽과 추진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앞서는 부분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노키아는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단말기 업체임은 분명하지만 벤치마킹하지는 않습니다. 시장을 리드하는 신제품을 내놓는 것은 결코 노키아에 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혁신만이 삼성전자가 살 길입니다.”

 애니콜 신화의 주역으로 널리 알려진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54)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최고경영자(CEO) 중 하나다. 지난 98년 5억달러에 불과하던 이동통신단말기 수출을 불과 3년만에 10배 가까이 늘렸고 삼성을 하이엔드 시장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지난 2년간 수상기록은 해외 언론에서 받은 것만 무려 100차례에 이를 정도다.

 조그마한 결점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완벽함과 무언가 결정되면 무섭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창기 해외 바이어들과 수출상담을 할 때 삼성전자의 단말기가 얼마나 튼튼한지 보여주기 위해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아 상대방을 놀라게 했던 일화에서 그의 경영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이 사장은 지금도 구미공장과 연구소를 오가며 새 제품에 대한 초기 디자인 단계부터 직접 나서 꼼꼼히 체크한다.

 “시장점유율은 단순한 수치에 불과합니다. 시장에서 브랜드력을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삼성전자는 일단 성공적입니다. 가장 빠른 제품을 적시에 시장에 내놓고 제값받는 전략으로 최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그는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앞지르기 위해선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5∼10년이 지나면 노키아는 결코 넘지 못할 경쟁자는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럽의 잭 웰치 욜마 오릴라 노키아 회장-선택과 집중

 

 80년대말 유럽 최대 TV업체인 핀란드의 노키아는 경영위기에 몰렸다. 120년 역사상 최대 위기였고 당시 사장이었던 카리 카이라모가 갑자기 사망했는데 경영 실패의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는 소문나저 나돌았다.

 이 같은 위기에서 노키아를 구출해 낸 것은 유럽의 잭 윌치로 불리는 욜마 오릴라 회장(52)을 비롯한 이사회의 최고경영자(CEO)들이었다. 오릴라 회장은 지난 92년 취임과 함께 업계 1위가 아니거나 1위가 될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했다. 고무·제지·펄프·타이어·가전제품·PC 등을 정리하고 이동통신단말기와 정보통신 인프라 부문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펄프사업 포기는 제지업체로 출발한 노키아의 정체성마저 부인한 것과 같은 과감한 결단이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계 정상에 다시 서는 노키아의 대역전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오릴라는 이후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의지 아래 “연구개발(R&D)은 노키아의 기본적인 기업정신”임을 내세우며 기술개발을 부추겼다. 그는 단말기 시장 진출 10년도 안돼 점유율 40%를 육박하는 세계 최강의 기업으로 키워놨다.

 그는 현장경영을 중시한다. “현장의 직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10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CEO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경영진이 현장에 대한 관심을 중단한다면 그 회사는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노키아는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오릴라 회장의 선택과 집중은 우리의 CEO들이 주목해야 할 벤치마킹 대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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