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파워 엘리트를 키우자-미국/유럽

■미국 ■

미국은 대학과 기업이 긴밀하게 협조해 우수인재를 키워내고 이들의 연구성과를 바로 상용화하는 시스템을 구축, 산학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게 필요한 고급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대학과 기업은 시장의 요구에 민감히 반응해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교수와 학생은 이에 참여해 연구를 진행하면서 현실에서 요구되는 첨단기술을 체득하며 자연스럽게 엘리트 인력으로 자라난다. 상대적으로 인성과 교양을 중시하는 교육 풍토를 갖고 있는 유럽의 대학들도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실용적 고급과학기술을 키우는 쪽으로 초점을 바꿔가고 있다.

 

 시장의 필요에 민감한 미국의 기술인력 개발

 

 미국 과학기술인력의 경쟁력은 단연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연구개발 체제 및 인력양성시스템은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정부 주도의 통일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을 키우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정책을 펼치지 않으며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노력도 국방이나 환경 같은 공공이익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세계 제일의 과학기술인력을 어떻게 키워낼까.

 그 해답은 무엇보다 미국 대학과 기업들의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유대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대를 이어주는 끈은 바로 시장의 필요다. 미국의 대학과 기업은 시장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들을 연구한다. 그리고 이런 연구 프로젝트들을 통해 각 대학의 기술인력이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연구과정을 통해 훈련받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우수한 공과대학 주변지역에는 항상 첨단기업들이 자리잡고 있고 미국의 주요 첨단기업은 인근 공대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스탠퍼드대학과 캘리포니아대학 인근에 위치한 실리콘 밸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또 동부의 MIT도 기업들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한편 학내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이나 특허를 외부 기업에 이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 대학의 전형적인 산학협동은 대개 이렇게 이뤄진다. 먼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특정기술이나 제품에 대한 프로젝트를 발주한다. 이 프로젝트는 시장의 필요에 대한 일종의 신호로 해석돼 대학에 전달된다. 그리고 어느 대학의 교수가 이 프로젝트를 맡아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이 학과의 대학원생 및 학부생은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연구를 돕게 된다. 교수와 학생이 산업체에서 실제로 요구하는 기술들을 함께 개발하면서 대학원생 등 고급인력들은 실질적이고 수준 높은 기술들을 현장에서 연구하고 익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개발된 기술이나 발견된 내용이 바로 학교의 커리큘럼에 반영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학의 고급인력들이 산학협동을 기반으로 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술 개발·연구 능력을 키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미국 퀄컴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어윈 제이콥스는 본래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컴퓨터공학과와 MIT 전기공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디지털통신 분야의 교과서를 집필한 학자 출신이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직접 사업에 투신, 85년 퀄컴을 설립했다. 퀄컴은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해 우리나라 업체들로부터 엄청난 로열티를 챙기고 있다.

 또 80년 제정된 베이-돌 법에 따라 대학이 자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사회나 기업이 요구하는 첨단기술을 연구·개발하려는 대학이 늘고 있다. 이 법은 기술 확산을 통해 경제성장을 촉진함은 물론 대학에서 수요가 있는 기술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등 기술인력의 훈련 및 동기 부여에 기여하고 있다.

 뉴햄프셔주 다트머스대학은 자체 개발한 기술을 바이오테크기업 메다렉스에 이전하고 대가로 받은 주식을 매각해 거의 1년치 연구예산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렸다. 캘리포니아대학은 인체 성장호르몬에 관한 특허료로 최근 바이오테크기업 제네테크로부터 2억달러를 받았다.

 또 상아탑 속에 갇혀 있지 않고 항상 시대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려는 미국 대학들의 부단한 노력도 과학기술과 IT의 파워엘리트를 키워내는 미국의 힘이다.

 미국 MIT 기계공학과 학장이며 미국 공학교육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서남표 교수는 “시대의 변화에 앞서 주기적으로 학과 과정에 변화를 줘왔다”며 “끊임없는 개혁과 변화가 MIT를 세계 최일류 대학으로 남게 한 힘”이라고 강조한다.

 서남표 교수는 130년 전통의 MIT 기계공학과를 개혁해 21세기의 변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계공학과 IT, 생명공학의 접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이런 개혁은 결코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교수와 학생에게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 대학의 분위기도 엘리트를 키워내는 토양이 되고 있다. 세계 최고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풍토가 자연히 형성되는 것이다. 보통 조교수 중 25∼40%만이 정교수가 된다. 젊은 조교수들은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6∼7년 자정 이전에는 집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연구에 몰두한다. 또 50분 강의를 위해 10시간 이상 준비해야 할 정도로 강의에도 신경써야 한다.

 학생들은 이런 교수 밑에서 함께 산학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주도적으로 연구에 참여한다. 노력하는 교수와 함께 학계와 산업계의 첨단흐름을 직접 접하며 연구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유럽 ■

 본래 인성개발 측면의 교육을 중시하는 것이 유럽 교육의 특징이었지만 최근 유럽 각국은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과학기술인력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영국의 교육혁신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교육은 우리가 마련하는 최고의 경제정책이다.”

 지난 98년 이런 발언을 하기도 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과학기술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골자로 하는 교육개혁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대학의 교육 및 연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은 각 대학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무역산업부의 과학 분야 예산을 앞으로 6년간 12억5000만파운드(약 20억달러)로 늘일 계획이다. 이런 지원은 만성적인 연구비 부족에 허덕이는 영국 대학에 희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연구에 종사하는 박사급 인력들에 대한 임금 지원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어서 우수인력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은 근본적으로 대학 교육의 실용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교육부와 고용부를 통합한 교육고용부를 설립했으며, 연구 지원과 과학기술정책을 조정하는 과학기술청도 무역산업부 산하로 개편됐다. 또 시장원리에 따른 대학의 구조조정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영국은 70년대 말 IMF 위기 이후 줄곧 추진해온 대학 개혁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생산성과 연구성과를 근거로 한 엄정한 평가 근거를 마련했다. 또 명문 런던정경대가 미국 컬럼비아대와 제휴하는 등 국경을 넘는 제휴와 합병 움직임도 일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운영 중인 170여개 그랑제콜(Grandes Ecoles)의 80%를 이공계 학교로 운영하고 있으며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공계 대학 에콜폴리테크도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국가의 최고급 엘리트를 양성하는 학교로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첨단기술 개발과 벤처기업 창출을 위해 대학을 포함한 국공립연구기관이 민간기업과 연계해 전국토를 포괄하는 ‘기술혁신을 위한 연구연계망’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경제·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연구개발 대상을 선정·지원해 이를 통해 새로운 제품·공정·서비스를 창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결국 새로운 기업과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연계망에 참여하는 대학·연구소·민간기업 인력·장비·지식 등의 통합이 촉진돼 시너지를 일으킨다. 정부는 이런 연계를 통해 과학기술인력의 경쟁력을 높이고 기술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IT·NT·BT 분야의 연계망 형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 프랑스는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국가전략의 핵심과제로 보고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프랑스는 특히 젊은 과학자와 박사과정 학생, 공무원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벤처기업 창업 절차 간소화, 연구원 및 교수 창업 지원, 창업을 위한 연구원의 일시휴직 인정, 교육기관 등의 기술자산 상용화 지원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독일의 대학은 국가 지원을 받으면서도 연구활동에 있어 전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교수가 공공연구소의 연구원을 겸임하거나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동학위 과정을 진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학 연구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전자공대 내에 ‘이노베이션테크놀로지센터’를 건립했다. 이 센터에는 마이크로칩의 개발과 설계에 주력하는 국내외 수십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재학 중 일을 하며 전자업계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생생히 익힐 수 있다. 러시아는 이런 연구센터가 많이 생길수록 두뇌 유출 등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인근 2만㎢ 부지에 초현대식 시설을 갖춘 ‘러시아의 실리콘밸리’를 건설 중이다. 러시아는 이곳이 우수인력이 모이는 미래 러시아 전자산업의 산실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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