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게임문화 현장을 가다>(7)주목받는 대만시장

 ‘작은 중국’ 대만은 종종 중국의 35개 성 가운데 하나와 비교되곤 한다. 면적이 남한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데다 인구도 2200만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의 경우 외곽지역을 합치면 면적과 인구에서 대만과 거의 맞먹을 정도다.

 최근 중국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독립국가로서 대만의 위상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지난 97년 홍콩을 반환받은 중국이 ‘하나의 중국 노선’을 국제사회에 천명하면서 대만인조차 ‘리틀 차이나’를 하나의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물론 대만은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50년 남짓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중국과는 다른 정치·경제·문화를 일궈온 곳이 대만이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한때는 ‘아시아 4용’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체제는 달라도 대만에서 중국의 그림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사람들의 생김새는 중국 남쪽지방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표준어로 베이징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음식문화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중국인이 자전거를 애용하듯 오토바이를 집집마다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이륜차’를 선호하는 경향까지 닮아있다. 차를 물 대신 마시는 모습도 중국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각종 안마시술소를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중국과 똑같다.

 대만의 게임산업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중국보다 훨씬 빨리 게임산업이 태동하고 개발력도 우수하지만 중국과 거의 비슷한 유저층을 갖고 있는 나라가 대만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대만에서도 불법복제가 난무하고 온라인게임 유저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만 대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종종 PC방으로 직행한다. PC방에서는 90% 이상이 PC게임이나 온라인게임을 즐긴다. 주로 즐기는 게임도 슈팅게임 ‘카운터 스트라이커’나 한국 온라인게임들이다. 요즘에는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3’와 한국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가 출시되면서 이를 찾는 학생들도 부쩍 늘어났다. 상하이나 베이징처럼 300석 이상의 대형 PC방도 속속 생기고 있다.

 타이베이 팔덕로에 위치한 전자상가 광화상장은 베이징의 전자상가 중관촌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의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한 이곳에서는 PC 및 전자제품을 비롯해 각종 게임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다. 게임 판매점에는 중국이나 홍콩과 마찬가지로 온라인게임 선불카드를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만 대만 전자상가에서는 중국보다 훨씬 많은 게임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출시된 ‘워크래프트3’는 물론 ‘삼국지 배틀필드’ ‘던전시즈’ ‘네버윈터나이트’ 등에서부터 한국에서도 아직 출시되지 않은 각종 일본 게임이 넘쳐난다. 심지어 ‘워크래프트2’ ‘디아블로2’ 등 멀티플레이 기능이 지원되는 PC게임의 경우 한국과 달리 싱글플레이 버전과 멀티플레이 버전을 분리해 팔기도 한다.

 비디오 콘솔게임 판매점도 간간이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PS2)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까지 구입할 수 있다. PS2는 이미 정식 배급사를 통해 유통되고 있으나 X박스는 보따리상인들에 의해 수입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격은 정품 PC게임은 800∼1200NT달러(한화 3만∼4만5000원)로 한국과 비슷한 편이다. 또 철지난 게임은 199NT달러(한화 7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처럼 복제품이 활개를 치면서 정품 PC패키지를 찾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 편이다. 반대로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이 활기를 띠면서 온라인게임 선불카드를 찾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대만 게임업체들도 주력사업을 PC게임에서 온라인게임 개발 및 배급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대만에는 100여종의 온라인게임이 격돌할 만큼 난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산 게임뿐 아니라 대만에서 자체 개발한 게임까지 가세해 온라인게임 종주국인 한국 못지 않은 경쟁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만 온라인게임에도 ‘한류열풍’이 거센 상태다. ‘천당’으로 불리는 ‘리니지’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 가운데 ‘드래곤라자’ 등 한국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 전체 시장의 70∼80%를 석권하고 있다. 최근에는 ‘라그하임’ ‘라그나로크’ ‘뮤’ ‘엔에이지’ 등 한국의 3D 온라인게임이 화제를 모으면서 1년 전 한국시장의 ‘3D 온라인게임’ 열풍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을동화’ ‘겨울연가’ ‘엽기적인 그녀’ 등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대만에서도 크게 히트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송혜교나 송승헌과 같은 한국 스타를 모르면 간첩으로 통할 정도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의 경우 ‘리니지’를 제외하고는 인기작 대부분이 한국 게임인지도 모르는 유저가 많다.

 온라인게임 이용자수도 많아 한국에 견줄 만하다. 최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천당(리니지)’의 경우 동시접속자수가 한국보다 많은 최고 13만명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는 대만 청소년들이 한국보다 용돈이 많은 데다 돈을 내고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게임 유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만에서도 게임중독 등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타이베이시는 학생들의 PC방 출입이 잦아지자 올 여름방학부터 학생들의 PC방 출입을 제한하는 시장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대만 정부도 한국과 중국에 이어 내년부터 온라인게임 등급제를 실시키로 하고 관련법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게임업체 관계자들은 온라인게임 등급제에 대해 대체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초고속 인터넷이 각 가정으로 확산되면서 온라인게임 유저의 무게중심이 PC방에서 가정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등급제를 시행하더라도 정부가 각 가정까지 단속할 뚜렷한 방안이 없다는 게 대만 게임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리니지를 서비스중인 감마니아 브라이언 창 마케팅 이사는 “대만에도 각 가정에서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70%에 육박한 상태고 대만의 경우 한국보다 온라인게임에 대한 법률체계가 미흡해 등급제 자체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대만 온라인게임시장은 한국에서 검증된 온라인게임이 재격돌하는 첫번째 해외 관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만=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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