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물가와 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으로 시작한 북한의 경제관리방식 개선 조치가 안팎으로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 당국이 직접 “45년 단행된 토지개혁만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밝힐 만큼 이번 경제개혁 조치는 시장경제적 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먼저 재화와 용역에 대한 국가 보조금 중단에 의한 가격체계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즉 생활필수품가격(농산물가격)과 공산품가격의 현실화(인상)이다. 또한 인상된 재화와 용역가격에 주민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월급 인상을 비롯 △생산 증대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환율의 현실화(1대 2.15→1대 153) △농업분야에서 토지사용료의 제정 등이 포함됐다.
예컨대 식량·연료·전력·교통요금·집세 등의 국정가격은 수십∼수백배 인상됐다. 가격 인상에 따라 일반 근로자의 임금도 18배(월평균 100∼150원→2000원 내외)나 올랐다.
세종연구소 이종석 연구위원은 “이번 경제개혁 조치는 우선 부족한 공급타개를 위한 불가피한 정책적 전환으로 파악된다”면서 “북한이 아무리 사회주의계획경제의 틀 내에서 설명하려 해도 결국 ‘사회주의원칙’의 외피를 쓴 시장확대의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며 지도부의 정책적 의지(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생산증대)와 정책효과 사이의 괴리가 시장의 확대로 이어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2일 도쿄에서 개최된 ‘북한경제세미나’에 참석한 북한 김용술 무역성 부상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김용술 부상은 “이번 조치의 핵심은 완전한 독립채산의 도입과 가격조정”이라면서 “독립채산의 도입은 채산성이 낮은 기업의 계획을 폐지하는 등 각 공장의 경영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며 각 기업이 실적에 따라 이익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가 대외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큰 관심사다. 남한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급체계의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남측과의 경제협력에 적극성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종석 연구위원은 “현재의 경제관리개선조치는 지속적인 공급보장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내부자원이 제약된 상황에 있는 북한으로서는 안에서 단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경제개혁 성공을 위해서는 외부경제지원이 필수적이며 이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북한연구팀장은 “가격현실화 조치를 통해 북한 경제인들도 원가 및 이윤개념을 체득할 수 있게 돼 일단 큰 장애요인의 하나가 제거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조치로 경제체제 차이에 따른 남북간 ‘코드 불일치’가 줄어들어 남북경협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북한이 앞으로 경제개혁의 지속과 대외개방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연구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시장조정 기능을 통해 계획능력을 회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하고 “정책변화의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 북한경제팀 박석삼 과장도 “북한은 이번 조치 이후에도 인플레압력 심화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개혁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대외개방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북한, IT발전으로 경제재건 추진 ■
7월부터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서 IT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올들어 북한은 약 10건의 IT관련 전시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매체를 동원해 그 중요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IT에 대한 젊은층의 열기도 남한 못지 않다. 최근까지 두 달 동안 북한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온 한양대 오희국 교수와 차재혁 교수는 “IT 분야의 차기 리더로 활동하게 될 대학생들의 열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라고 전했다. 최근 청년절(8월 28일)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전국 청년정보기술성과전시회’와 ‘전국 청년컴퓨터기술경험토론회’에서는 청년들이 개발한 420건의 프로그램과 550여건의 정보기술 제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내각 교육성은 관련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에 컴퓨터과학대학·정보과학기술대학·기계과학기술대학을 신설했으며 각급 학교에 컴퓨터 수재반도 운영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관심을 쏟는 데는 IT육성 없이는 경제회복은 물론 강성대국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난해부터는 국가적 차원에서 ‘21세기=IT산업시대’라는 등식을 앞세워 IT발전을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단번 도약’의 핵심고리로 강조해 왔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1월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도시인 상하이를 둘러본 뒤 첨단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IT산업 육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에 앞서 로동신문도 지난 5월 “21세기는 사회경제 생활의 모든 분야가 정보화되는 정보산업시대”라며 “경제강국 건설 과정에서 정보산업 발전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사업의 하나”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은 현재 시행하고 있는 경제개혁 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IT의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현재 IT분야 인재양성과 산업현장의 자동화·전산화·현대화를 위한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을 정보화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결국 북한은 앞으로 경제재건을 위한 돌파구로서 IT산업의 발전에 힘쓰는 한편 IT를 매개로 한 남북간 교류협력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인터뷰: 리상춘 총련 과협 컴퓨터전문위윈회 위원장■
재일교포로 북한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 리상춘 컴퓨터전문위원회 위원장은 수시로 방북해 IT협력을 해오고 있으며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통일IT포럼 창립1주년 세미나에서 ‘한국-조선-일본을 연계한 3국 IT교류협력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북한의 대남 IT교류협력 의지는.
▲북한의 전문가들은 정보화, 정보산업 발전에서 IT교류가 하나의 생명선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으론 모든 분야에서 정치적 판단이 최우선적으로 평가됨으로써 남북 IT교류라 하더라도 순수 기술·경제협력으로만 판단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긴 하다. 이 점을 이해하면서 전문가들의 교류를 위주로 한 ‘바텀-업 접근’이 중요하다.
―북한의 IT 육성 정책이나 실태는.
▲지난해부터 정보화 정책을 명백하게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시 하는 것은 인재육성이다. 중고등 교육에서 IT전문가 육성을 위한 시책을 세워 많은 자재와 인재를 투입했다.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장·기업소나 시민강좌 같은 일반강습을 통해 IT교육을 많이 벌이고 있다.
―인터넷 개방 준비 움직임은.
▲지난해 말 개통된 ‘실리뱅크’에서 진행하는 e메일 전송봉사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인터넷 개방을 위한 방향성을 알 수 있으며 또 실리뱅크와 유사한 봉사체계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과학자·기술자들도 개방의 필요성에 관해 이해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개혁과 관련한 남북 IT교류협력의 확대 가능성은.
▲7월부터 시작된 경제변혁시책은 장차 북측의 산업발전 토대가 될 수는 있으나 중요한 것은 폭넓은 민간단위의 교류협력을 조직화하면서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확대노선만 중시하면서 경협에서 성과가 못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인터뷰: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 ■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은 지난해 두 차례 방북, 삼천리총회사와 IT분야 공동 개발에 합의하고 평양정보쎈터 연구원들과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 및 전문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협력사업 현황과 계획은.
▲평양정보쎈터와 합작으로 지난해 중국 단둥에 하나소프트를 설립해 북측의 기술 인력과 남측의 자본을 토대로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30여명의 북한 인력이 단둥에 상주하면서 남한 기업들의 위탁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점차 인력을 확대해 하나소프트를 인도의 인포시스와 같은 개발 전문회사로 육성할 계획이다.
―대북 IT협력 사업의 매력은.
▲북한의 우수한 소수 정예기술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주요 개발은 서울에서 진행하고 보조 부문의 개발을 위탁했었는데 현재는 네트워크 프로토콜 개발 등 핵심업무도 진행하고 있다. 경험은 일천하지만 워낙 뛰어난 기술인력들이어서 많은 핵심 개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인도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인건비가 낮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북한 인력의 장단점은.
▲장점으로는 자질이 우수해 개발의 핵심에 쉽게 도달한다는 것과 열성적인 개발 자세를 들 수 있다.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개발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관리 능력의 부족과 하드웨어·시스템에 대한 지식의 한계를 들 수 있다.
―북한인력에 대한 재교육 실시 효과는.
▲현재까지 두 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교육 과정을 마쳤는데 향후 예산확보 문제가 큰 걸림돌이다. 북한의 각 연구소로 돌아간 교육생을 매개로 확산 교육이 자체적으로 진행돼 향후 남북 공동개발 사업이 순조롭게 될 수 있는 기초 교육이 이뤄지는 토대가 되고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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