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0주년특집>새로운20년-영화 속 미래기술

 컴퓨터 그래픽과 다양한 특수효과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것들이 스크린을 통해 재연되고 있다. ‘코드명 J’ ‘가타카’ ‘매트릭스’ ‘에이리언’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5원소’와 같은 SF물은 과학적 상상력과 컴퓨터 그래픽이 결합된 대표적인 미래영화들이다.

 그렇다고 SF영화가 완전히 허구맹랑한 얘기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SF영화가 비록 상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현실상황을 반영하듯 SF영화 역시 미래에 나타날지 모를 각종 첨단기술과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얘기다.

 조르주 멜리에가 1902년에 제작한 ‘달세계 여행’은 SF영화의 효시로 꼽힌다. 당시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달여행을 소재로 다룸으로써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한층 확대했다는 평을 얻은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67년이 지난 69년, 인류는 달에 발을 내디뎠다. 최근에는 화성·토성·목성으로의 우주비행이 영화 소재로 등장하는가 하면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내용으로 발전하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68년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극화한 ‘2001:우주 오딧세이’는 우리가 겪은 2001년의 모습과 흡사하다. 영상전화는 상용화 단계에 와 있고 음성인식 확인장치는 이미 사용되고 있다. 국제 우주정거장은 연구용으로 수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으며 머지 않아 민간인을 위한 우주호텔도 건설될 것이다.

 특히 로봇은 SF영화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26년 프리츠 랑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메트로폴리스’에 로봇의 개념이 등장한 이후 ‘바이센테니얼맨’ ‘AI’로 계속됐다. 초기에는 다소 엉성하거나 조잡한 형태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교하고 인간에 보다 근접한 형태로 바뀐 것이 특징이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로봇기술들이 이들 SF영화에서 모티브를 얻고 다시 영화에 투입되며 선순환 구조를 그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코드명J’에서는 전세계가 거대한 네트워크로 통제된다. 특수요원들은 데이터를 뇌에 입력해서 비밀리에 전달하는데 주인공은 자신의 뇌를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처럼 이용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지운다.

 ‘007시리즈’와 같은 첩보영화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지문인식과 음성인식 시스템을 사용해왔다. ‘데몰리션맨’과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홍채 및 망막인식시스템으로 한단계 진보된 형태가 선보인다. 특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를 예측해서 범죄자를 추적하는 내용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각막 스캐너, 동물 촉수를 연상시키는 기계장치와 자기부상 자동차 추격장면 등 관객의 상상과 예측을 뛰어넘는 첨단기술들이 대거 선보여 영화에 박진감과 힘을 더하고 있다.

 첨단기술은 영화의 주거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이 2200년인 ‘제5원소’에서 주인공인 브루스 윌리스는 배같이 생긴 포장마차식 가게에서 음식을 산다. 아파트 창문을 열고 포장마차식 가게에 접속하면 가게주인이 직접 서비스를 하는 형태다. 자동차는 공중을 날아다닌다. 자동차라기보다는 하늘을 나는 우주선에 가깝다. 그나마 앞차와의 간격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안전한 차간거리는 주행속도의 1000분의 1 이상이라고 한다. 즉 시속 100㎞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의 경우 100m 이상 돼야 안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차간거리가 5∼10m에 불과한 데도 안전이 보장된다면 도로의 효율성은 10∼20배 상승할 전망이다. 따라서 영화속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고속도로와 도심의 고질적인 교통정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생명복제도 SF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가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를 그린 ‘가타카’에서는 생명과학기술에 놀라움을 자아낸다. 심장질환을 앓으며 범죄자로 살다가 31살에 사망할 운명이던 주인공이 우성인자를 배합해 완벽한 인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거듭하고 최첨단 기술이 발전해도 영화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는 ‘따뜻한 사랑’이다. 지구를 침공한 적과 싸우고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기에도 종국에는 사랑과 우정을 갈망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과학자들이 그린 2054년 지구`-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경우 ■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일선 과학자들이 제작과정에 직접 참여한 작품으로 현재 개발중인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2054년의 미래사회를 재창조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런 제작과정 덕택에 이 영화에서는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기술들이 대거 선보였다.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e페이퍼’ 기술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당국의 추적을 피해 지하철 속으로 숨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지하철 승객 중 일부가 신문을 보고 있는데 이 신문은 실시간으로 정보가 업데이트되며 심지어는 동영상까지 나타난다. 지명수배자가 된 주인공은 결국 신문 때문에 정체가 드러나 다시 도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두번째는 최첨단 지능형 교통시스템(ITS)이다. 영화속에서는 자기역학을 응용한 자동차가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빌딩벽을 오르내리고 도로상에는 자동차들이 차간 안전거리 없이 빠른 속도로 달린다. 이렇게 차간 거리를 최소화한 상태에서의 고속 주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ITS의 경우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생체인식시스템도 관심을 모으는 기술 중 빼놓을 수 없다. 주요 건물이나 거리, 지하철역에는 홍재나 망막 등 인간의 안구로부터 정보를 추출해내는 생체 인식기가 설치돼 있어 개인정보를 분석해낸다. 또 생체인식로봇은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의 신원을 파악하기도 한다.

 이밖에 영화속에는 곳곳에 차세대 초고속, 광대역 통신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무선 네트워킹 기술이 활용되는 부분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인터뷰:최성우 과학평론가(과학평론가·`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저자·사진) ■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SF영화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으나 SF영화는 미래 과학기술을 한발 앞서서 예견하고 미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라는 저서에서 ‘상상이 과학기술 발전의 견인차’임을 역설한 과학평론가 최성우씨(46)에게 SF영화는 ‘미래사회상을 가늠케 해주는 지표’다.

 물론 근래에 인기를 모은 SF영화 중에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디스토피아, 즉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암울하게 묘사한 작품도 많다. SF 명작으로 꼽히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서기 2019년의 모습은 어둡고 칙칙하게 묘사되고 있고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와 같이 컴퓨터와 사이보그에 의해 인간이 오히려 억압받고 지배당한다는 이야기가 SF물에 단골로 등장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최성우씨는 “과학기술이 영화의 소재로 이용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SF영화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불안심리를 지나치게 증폭시키고 기술 발전에 대해서도 막연한 공포감이나 거부감을 불러올 수도 있으나 이는 ‘할리우드류 영화가 지향하는 지나친 상업성·오락성에서 기인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래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아울러 과학기술과 인간의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SF영화의 진정한 의의”라고 강조한다.

 최성우씨는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칠수록 영화에서도 정보기술·바이오공학·나노기술 등을 다룬 작품들이 많아질 것”으로 주장한다. 그는 또 “나노기술·뇌과학·생물정보학 등 이른바 ‘학제간 연구’가 새로운 추세임을 감안하면 SF물도 한두 분야의 단편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여러 분야를 융합한 ‘퓨전적인’ 작품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SF영화가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지론. 그는 “학교에서 SF영화를 보고 토론식 수업을 할 경우 정보기술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미래는 그만큼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로 유추해 본 2200년 우리 모습은? ■ 

 모든 신생아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큰 키에 잘생긴 외모, 탁월한 지식과 냉철함, 그리고 완벽한 우성인자를 갖추고 있다.

 아파트는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들. 자동차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장착돼 있어서 행선지만 입력하면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 길이 막히면 우주선과 같은 형태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모든 작동은 기계식이고 공간절약형이다.

 음식 배달도 특이하다. 주스를 다 마셔서 병 무게가 가벼워지면 식료품점에서 바로 우유를 배달해준다. 냉장고에 인터넷이 연결돼 있어서 식료품점에 실시간으로 주문을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파트 앞을 날아다니는 포장마차식 가게에서 바로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다.

 평면형 벽면TV, 영상전화는 상용화된 지 오래다. 대신 벽면TV를 창문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창문 밖 전망을 마치 TV채널 바꾸듯 마음대로 바꾸며 기분에 따라 한때는 단풍이 화려한 설악산을, 한때는 눈으로 뒤덮인 로키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뇌 속에 기억을 이식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의 기억을 추출해서 디스크에 저장, 판매하는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거리 전광판에서는 우주 행성을 소개하는 문구가 흘러나온다. 화성인도 지구에 살고 있는 터에, 화성과 목성으로 우주비행을 하는 것은 이미 평범해진 일이다.

 얼마전 유전자 치료법이 개발되면서는 그야말로 무병장수시대가 된다. 원래는 아기가 출산해서 3년 3개월 3일째되는 날 심장판막증에 걸리고 33세에 위염, 53세에는 위암이 걸리게 돼 있으나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 완쾌가 가능하다. 또 노화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장수 유전자로 교체하면 오래도록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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