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짝짓기로 세상이 `진화`한다 ■
각종 하이테크 기술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디지털 컨버전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가전 제품과 컴퓨터가 하나로 결합되고 방송·통신·네트워크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정보산업은 물론 전세계 각종 산업 분야에 걸쳐 디지털 혁명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미 90년대 초반 이뤄지기 시작한 미디어 분야의 컨버전스는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일례로 CD롬에 음성·데이터·영상 등의 각종 정보가 통합되고 있다.
미디어 분야의 컨버전스에 힘입어 이제는 휴대폰과 PDA를 결합한 스마트폰, VCR와 DVD를 결합한 콤보 드라이브, MP3 내장 노트북PC, 하드디스크 내장 셋톱 박스 등 단말기 분야에서도 활발한 컨버전스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또 인터넷 방송, 양방향TV, 인터넷 전화 등 네트워크 분야에까지 부분적인 컨버전스가 실현되고 있다.
컨버전스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컨버전스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비디오 게임기 업체인 소니와 차세대 게임기 시장을 놓고 겨루는 것처럼 과거에는 전혀 경쟁관계를 생각할 수 없었던 서로 다른 분야의 기업들끼리도 서로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무한 경쟁에 빠져들게 됐다.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진 것만큼 컨버전스 표준을 주도하기 위한 기업간 연합과 제휴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창출되고 있다. 일례로 휴대폰용 OS시장에서는 MS를 중심으로 한 진영과 유럽의 심비안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또 광대역망 사업자, 가전업계, 건축업자 등은 홈네트워크, e오피스 구축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고 금융과 이동전화를 연결한 무선결제서비스, 자동차와 무선망이 융합한 텔레매틱스 시장은 아직 초기단계이기는 하지만 기하급수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휴대폰 소액 결제 서비스의 경우 지난 2000년 처음 등장, 첫해 50억원 규모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시장규모가 1000억원대로 커졌고 올해에는 2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신용결제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신용카드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비자의 의식과 라이프 스타일도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대하는 기업도 달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이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독점 기업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하면서 지금까지 단순히 제품 판매에만 열중하던 것에서 벗어나 고객의 관심과 호감을 얻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 경쟁에 나서고 있다. 또 소비자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시장 중심’ ‘브랜드 중심’의 사업 운영방식이 중시되고 있다. 일례로 이동통신의 경우 ‘Bigi’ ‘Na’ ‘드라마’ 등 차별화된 서비스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컨버전스의 물결은 정보기술(IT) 분야 내에서는 물론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 과거 서로 다르게 여겨지던 분야로까지 파급되고 있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IT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의 경우 집적도가 18개월마다 두 배씩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2007년에 반도체 선폭이 65㎚가 돼야 하고 2010년에는 45㎚가 돼야 하나 현재의 기술로 70㎚의 선폭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로 여겨진다. 또 현재 1조원에 이르는 반도체공장 건설비용도 2010년에는 30조원으로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화학지식의 도움으로 반도체 집적기술이 돌파구를 마련했듯이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단전자트랜지스터, DNA컴퓨터 등과 같은 BT와 NT가 또 다른 기술 돌파를 이뤄줄 경우 무어의 법칙의 생명이 더욱 연장될 수 있다.
이외에도 IT와 BT, NT가 서로 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지름이 2㎚에 불과한 DNA와 RNA를 서로 유기적으로 작업해 다양한 기능의 단백질을 형성하는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이를 이용해 반도체를 대신할 초미세 소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기술적 한계를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비롯해 오디오 센서(귀), 눈(광학센서), 신경계(초미세 배선) 등에 대한 지식도 IT 발전에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특히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의 토양이 될 광대역 통신망 기반을 갖추고 있어 유리한 입장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수가 700만명을 넘어섰고 휴대폰 보급대수도 2800만대를 웃돌고 있다. 또 디지털 지상파 방송개시에 이어 디지털 위성방송이 출범했고 월드컵 개최 등에 힘입어 디지털TV, DVD 등 디지털기기의 보급이 크게 늘었으며 온라인 게임의 붐이 지속되는 등 광대역 네트워크 기반의 게임, 방송, 정보서비스 등이 태동하면서 기존 서비스와의 융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 무선랜과 2.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는 무선 인터넷과 휴대폰, PDA 기능 등이 결합된 스마트폰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디지털 컨버전스란
디지털 컨버전스는 말그대로 디지털 제품이나 기술간의 융합을 의미한다. 단적인 예로 영국 코콤사가 개발한 ‘오리가미’를 들 수 있다. 이 제품은 휴대전화·영상회의·PDA·MP3 기능이 융합된 전자수첩 크기의 만능 IT기기라는 컨셉트를 표방하고 있다. 또 HP와 IBM이 도입한 신개념 PC인 ‘카멜레온’도 대표적인 제품이다. 카멜레온은 사무실에서는 PC로, 이동중에는 노트북PC나 PDA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디지털 컨버전스는 △기존 제품의 디지털화 △디지털 제품간의 융합 △광대역 네트워크로의 통합 등과 같은 3단계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한다고 설명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업, 제품,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고 소비자의 생활이나 문화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보고 있다.
■국내외 초일류기업들 미래시장 선점전 `후끈`■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도래는 앉아서 맞이하는 기업에는 위기가 되겠지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업에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세계 및 국내 초일류 기업들은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미래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대의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는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결합을 의미하는 IP(Internet Protocol)를 준비중이며 일본 최대의 통신 업체인 NTT는 10년 뒤에는 모든 전화를 인터넷 기반으로 교체하기 위해 차세대 네트워크(NGN)를 구축중이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대비한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DVD·하드디스크·메모리스틱·셋톱박스 등 서로 다른 디지털 기기를 결합해 하나의 제품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은 물론 각 기기의 데이터를 상호 호환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제품 출시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DVD플레이어와 하드디스를 결합한 제품을 개발, 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수출에 나선 데 이어 최근에는 국내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삼성전자는 올해에 이 제품을 20만∼30만대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소니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메모리스틱을 복합화한 DVD 플레이어도 국내에 선보였다.
LG전자도 메모리스틱을 복합화한 DVD플레이어를 내놓았으며 DVD플레이어와 다른 스토리지 기기를 결합한 신제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양사는 이외에도 DVD와 셋톱박스를 결합한 일체형 제품, DVD·하드디스크·메모리스틱·셋톱박스 등을 하나로 결합한 제품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DVD와 하드디스크 통합 제품을 이용하면 DVD 타이틀 또는 디지털TV를 통해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후에 재생할 수 있는데 40Gb의 하드디스크를 탑재한 제품의 경우 20여개의 타이틀을 저장할 수 있다.
소니가 개발한 메모리스틱은 캠코더나 노트북PC 등에 저장된 데이터를 DVD와 연결된 TV를 통해 시청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한 파일을 포토앨범으로 만들어 TV를 통해 재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은 이제야 시장에 소개되기 시작한 상황이어서 아직 성공 여부를 점치기는 어렵지만 삼성전자의 DVD와 VCR를 결합한 초기 컨버전스 제품인 DVD콤보의 사례를 보면 어느정도 시장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DVD콤보는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7%를 차지하는 등 크게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단순히 전자업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LG텔레콤의 경우 LG카드와 서로 손잡고 휴대 전화번호로 카드를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한국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아파트 서비스인 아파트 랜도 보편화됐다. 아파트 건설업자와 네트워크 사업자가 시공단계에서부터 협력해 네트워크 사업자는 설치 비용을 절감하고 건설업체는 분양을 촉진시킬 수 있다. 또 입주자도 즉시 광대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일거삼득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다. 일본·중국 등에서도 한국의 아파트 랜 비즈니스 모델 도입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디지털 컨버전스는 IT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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