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컴퓨터는 어떻게 발전해 나갈까?’
다양한 예상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리드(grid)’ ‘양자 컴퓨터(quantum computer)’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 ‘DNA 컴퓨터’ ‘생물 컴퓨터(biological computer)’ 등을 차세대 컴퓨터로 꼽고 있다. 특히 그리드와 양자 컴퓨터는 가장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은 물론 현재의 정보기술(IT)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으면서 인류 과학기술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 컴퓨터=양자컴퓨터는 원자 이하의 차원에서 입자의 움직임에 기반을 두고 계산을 수행하는 컴퓨터를 지칭한다. 이전의 어느 컴퓨터보다 연산이 빠르다. 실리콘 회로로 이뤄진 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계산을 실행한다. 슈퍼컴퓨터로 10조년 걸릴 계산을 1시간에 해치울 수 있는 정도다.
이는 양자 컴퓨터 내의 데이터 단위가 기존 2진수 기반의 컴퓨터와는 달리 한번에 하나 이상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대로라면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각각의 생각들은 비록 그것들이 동일한 입자에서 일어나더라도 서로에게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컴퓨터는 정보를 하나씩 처리하므로 계산이 한가지 경로로 이뤄지는 데 반해 양자 컴퓨터는 ‘마이크로 세계에서는 물리적인 상태가 중복될 수 있다’는 양자역학 원리를 기초로 하나의 소자에서 두가지 상태를 중층적으로 만들어 동시에 계산한다. 원자 하나가 동시에 여러가지 양자 상태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는 양자 컴퓨터는 여러가지 연산을 한번에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양자 컴퓨터 내의 기본적인 데이터 단위를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 중 ‘큐비트(qubit)’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동시에 여러개의 값들을 갖는 비트다. 큐비트는 각각 고(논리 1) 또는 저(논리 0)가 될 수 있는 2개 이상의 상 또는 차원을 가지고 있다. 만약 큐비트가 2개의 상을 갖고 있다면 동시에 4개의 서로 다른 상태, 즉 00, 01, 10, 그리고 11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만약 3개의 상을 가지고 있다면 000에서 111에 이르는 8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가질 수 있다. 큐비트가 10개라면 한번에 가능한 계산이 210(1024)번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원리로 큐비트가 늘어나면 능력 역시 막대하게 향상된다.
양자 컴퓨터는 △암호 해독 △통계 분석 △이론 물리학 문제의 해결 △많은 변수들이 개입된 최적화 문제의 해결 등과 같은 분야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분야의 연구개발자들은 상당한 시간 동안 적절한 방법에 반응하는 입자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한다. 아주 근소한 장애만 있어도 양자 방식으로 일하던 컴퓨터가 작동을 멈추고 ‘한번에 단 한가지의 생각만을 하는’ 일반적인 컴퓨터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는 약간 벗어난 전자기장이나 물리적 움직임, 또는 아주 작은 방전조차도 이러한 과정을 분열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각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소자의 개발에 나섰다.
◇생체 칩=지난 5월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제이콥스씨 가족은 쌀알 만한 크기의 생체 칩을 피부에 심기로 했다. ‘베리 칩’이라 불리는 이 칩은 가로 세로 2.1×12㎜로 개개인의 병력, 유전자 정보 등을 담고 있다. 고유번호를 부여해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특수 스캐너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 의료진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의학자들은 이식에 소요되는 시간이 10초에 불과한 생체 칩이 빠르게 대중화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사용승인 절차를 거쳐 일반에 시판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앞으로 10여년 후에는 여기에서 몇걸음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가 에너지를 만들어가며 몸을 단말기로 활용하게 될 날이 현실화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각종 휴대단말기 기능의 체내 이식이 보편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IT는 치료 목적을 넘어 건강한 사람의 ‘기능 증강’ 수단으로 활용되게 된다. 말 그대로 TV에서나 보던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를 현실에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오는 2015년에는 생체 칩을 넘어 체내에 이식되는 기기들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컴퓨터 자체를 소형화해 몸속에 심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네트워크를 통해 필요한 정보는 언제든지 즉시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이론적으로 무한한 정보를 휴대할 수 있다. 이 때 사람에게 장착되는 것은 사람의 의도를 네트워크에 전달하고 결과를 제시하기 위한 인터페이스들 뿐이다.
인간의 동작을 이용해 발전하는 방안도 시도되고 있다. 구두 밑창에 설치한 발전기로 보행할 때에 드는 힘을 추출하거나 팔의 움직임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내는 손목시계는 이미 상품화됐다. 인간의 체온과 외부기온의 온도차이를 이용한 발전기구도 있다. 더욱 작은 발전기구로는 사람이 호흡할 때 뇌의 움직임과 혈관내 터빈을 삽입한 혈관발전 등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가장 기발한 것은 인체를 이용한 통신이다. 인체를 케이블 대신으로 활용해 장착된 기기간에 데이터 통신을 한다는 이른바 생체네트워크(PAN:Personal Area Network)가 현실화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연구소와 IBM에서 개발한 PAN에 이용되는 것은 ‘전계’. 블루투스와 같은 ‘전파’가 아니어서 적은 에너지로 충분히 고속통신이 가능하다. 특히 신체가 닿지 않으면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없기 때문에 기밀성이 높고 생체정보를 이용한 인증도 쉽다. 현재까지는 특정 장소에만 설치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미래의 장착형 단말 시대에는 유력한 통신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이테크 옷=후드에 단추처럼 나와 걸려 있는 이어폰을 뽑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트레이닝 복, 어디에 가 있든 자녀의 위치를 수시로 파악할 수 있는 아동 의류, 노인들의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모니터링 기기와 이 데이터를 원거리로 전송하는 안테나가 부착된 양복 등 기존의 의상 개념을 일거에 바꿔버릴 만한 옷들을 거리에서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휴대폰·블루투스 등 통신기술은 물론 MP3와 같은 각종 첨단 디지털 기술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하이테크 섬유의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하이테크 섬유는 옷을 만드는 재료이긴 하지만 반도체 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점에서 섬유라기보다는 차라리 ‘입는 칩(wearable chip)’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이 섬유가 갖고 있는 부품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은 열전력발생기(thermogenerator) 반도체. 인체 표면과 의복 사이의 온도차를 이용해 전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동력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옷을 입고 조깅하면 옷에 붙어 있는 MP3플레이어 기능은 무한정 이용할 수 있다.
오디오 모듈도 중요하다. 오디오 모듈은 마이크로 컨트롤러·음성처리 칩, 착탈식 배터리·멀티미디어카드(MMC) 모듈, 이어폰·마이크, 센서키보드 등 4개 단위로 이뤄져 오디오 칩이 마이크와 이어폰·메모리·키보드·디스플레이·센서·액추에이터들과 연결돼 있으며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오디오 모듈을 조절한다.
현재까지 하이테크 섬유를 이용해 최초로 만들어진 의상은 MP3플레이어 재킷을 들 수 있다. 칩과 착탈식 배터리, 데이터카드, 신축성 키보드, 이어폰으로 구성된 MP3플레이어를 재킷에 결합시켰다. 소매에는 키보드가 붙어 있고 메모리 카드와 이어폰 잭은 칼라에 달려 있다. 또 음성인식시스템도 갖춰 사용자가 키보드를 이용하지 않고도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스마트 라벨’도 제품화를 앞두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이 제품은 다양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소형 칩과 무선통신용 안테나를 섬유 라벨에 내장시켰다. 상용화되면 의복의 세탁방법을 세탁기에 자동으로 알려주거나 각종 물품에 부착돼 물류 자동화에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제 옷을 입는 이유는 더 이상 아름다움의 과시나 신체 보호가 아니다. 정보단말기 역시 충전기와 함께 책상에 놓여 있다든지, 가방속에 던져진다든지 하는 등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의사가 처방전 대신 ‘처방 의상’을 써주고 양복을 양복점 아닌 하이테크 매장에서 구입하게 될 날이 다가오는 것이다.
◇기타=기존의 2진법에서 사용되는 ‘0’과 ‘1’이라는 2개의 코드가 아니라 DNA를 구성하는 A(아데닌), C(시토신), T(티민), G(구아닌)라는 4개 코드를 이용한 컴퓨터가 바로 ‘DNA 컴퓨터’. 2진법을 A·C·G·T의 4가지 코드로 전환한 뒤 문제를 지닌 긴 DNA 가닥 하나와 해답을 지닌 짧은 DNA 가닥들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 컴퓨터를 구성했다. DNA 컴퓨터의 잠재능력에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실리콘을 원료로 한 기존의 반도체 칩에 비해 DNA의 염기배합을 통해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기 때문. 코드가 많아질수록 연산을 빨리할 수 있다는 원리에 기반을 둔다. DNA의 4개 코드뿐만 아니라 조만간 8개의 코드, 18개의 코드, 36개의 코드 등 무한대 디지털 기술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DNA 컴퓨터는 이제 시작단계로 개발이 더 진행되면 컴퓨터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DNA 컴퓨터 개발이 순조로울 경우 컴퓨터 소형화와 대량 정보처리, 고속화 등은 새로운 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현재의 실리콘 칩 대신에 생명체의 정보전달 과정을 이용하는 ‘생물 컴퓨터’의 개발도 활발하다. 과학자들은 생물 컴퓨터가 엄청나게 큰 저장능력을 갖고 있어 기존 전자식 컴퓨터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소형화·열발생 등의 문제를 일시에 제거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조지아공대에서는 거머리를 이용한 초보적인 생물 컴퓨터를 개발했다. 거머리의 뉴런(신경세포의 최소단위)들이 각각 서로 다른 특이한 전기신호를 낸다는 데 착안한 것. 각 신호들을 1, 2, 3과 같은 숫자에 배당할 경우 이 뉴런들을 서로 연결하면 이 수들의 합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생물분자처럼 움직이는 생물 컴퓨터 모형이 공개되기도 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살아 있는 생물분자들로 이뤄졌지만 작동원리는 도르래나 기어처럼 움직이고 주위 세포를 끌어모으거나(덧셈) 분리하고(뺄셈), 또 새로운 세포를 복제하는(곱셈) 등 다분히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집합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재질로 된 이 생물 컴퓨터의 모형은 30㎝지만 진짜 생물 컴퓨터는 리보솜 크기(2500만분의 1㎜)만하게 초소형화할 수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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