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국제조달협정 굴레벗나

 KT가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함에 따라 공기업에 적용되는 국제조달협정을 개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으나 미국·캐나다·EU·WTO 등이 이를 외면하고 있어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망된다.

 국제조달협정은 지난 90년 한·미 정부간 전기통신장비 관련 정부조달에 관한 쌍무협정을 맺고 정부와 정부투자기관의 통신장비 조달에 관한 기본원칙과 절차를 규정한 것이다. 이 협정은 당초 미국이 한국의 정부 및 정부투자기관의 장비입찰 때 자국 기업이 배제되지 않고 ‘공정한’ 참여를 보장받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캐나다·EU·WTO와도 유사하다.

 그런데 KT가 완전 민영화함으로써 한국이 이들과 맺은 협정의 개정 또는 폐지가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정작 협정상대국인 미국이나 EU는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EU는 KT가 민영화됐기는 하나 유효경쟁이 보장되지 않은 환경이라고 보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정부가 KT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조달협정 대상에서 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WTO 역시 같은 입장이며 캐나다는 미국과 EU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협정 대상국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KT만 곤혹스럽다.

 KT는 협정을 따를 경우 1억원 이상의 장비를 구매할 때 발주에서 구매까지 1년 6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급격히 발전하는 통신기술의 라이프사이클을 못따라간다. 나아가 신속한 투자를 통해 신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신사업의 육성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KT 관계자는 “조달협정 때문에 사기업인 KT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협정 기준과 원칙을 준수해야 해 불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국내 조달환경도 크게 바뀌었고 조달에 참여하는 외국계 기업에 대한 부당한 대우도 없는데 EU나 미국측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관계자는 또 “오히려 에릭슨·알카텔 등 외국계 통신기업들도 조달협정의 폐지에 동의한다는 서한을 보내올 정도”라고 말했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조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달협정의 원칙은 외국의 유명 통신기업은 규제하지 않으면서 KT만 규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종의 역차별이다.

 KT는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아예 한·EU, 한·미, 한·캐나다 협정은 물론 WTO와의 협정을 모두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협상을 진행시켜 나가기를 기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초부터 몇차례 진행해온 한·EU 통신장비조달 연례회의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협상주체인 우리 정부가 다른 현안으로 인해 조달협정 문제 해결을 뒷전에 놓아두고 있다.

 현재로서는 국제조달협정의 폐지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U·미국 등이 협상 자체에 제대로 응하려 하지 않는 데다 WTO까지 주도해 협상 타결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WTO의 경우 28개 회원국 모두가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해 ‘첩첩산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EU와 미국의 거부 논리가 워낙 빈약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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