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거품의 의미

 IT경기 침체 이후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하나가 거품(버블)이다. IT산업에 대한 상대적 기대가 무너지면서 ‘거품’이란 단어가 주요 비유대상으로 오르내렸다. 여기서 거품은 ‘기대=실망’이라는 뜻이다.

 또 최근에는 수질오염을 상징하는 단어로도 전락했다. 오염된 물에 떠 있는 흉물스러운 거품은 오염의 심각성을 가늠케 하는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본연의 뜻과 달리 거품이 산업이나 실생활에 있어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단어로 추락한 느낌이다.

 그러나 반대로 거품없는 세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활에서의 거품은 인류 발전에 큰 흔적을 남겼다. 거품을 일으키는 세제의 개발은 양잿물에 의존하던 세탁을 보다 편리하게 바꿨다. 상온 4℃, 거품 2㎝의 맥주는 최상의 맛을 내는 술이다. 거품없는 맥주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거품은 또 탄산청량음료를 탄생시켰다. 톡 쏘는 맛으로 갈증을 해소시키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빠진 청량음료 또한 제맛을 낼 수 없다.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70년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품없이 발전한 산업은 없었다. 70년대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에너지산업에 대한 기대는 컸었다. 에너지 관련 산업은 모두 성장산업으로 인식돼 불황 중 최대의 호황을 구가했다. 정부도 에너지정책의 일환으로 에너지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육성했다. 에너지 버블의 시대였다. 또 80년대 부동산 투자 열풍은 지금도 꺼지지 않는 버블을 만들었다.

 좀더 과거로 돌아가 30년대 미국의 자동차·항공기산업 역시 신기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신기술에 대한 동경이 막대한 투자자금을 끌어모으는 버블현상으로 이어졌다. 마차에서 엔진이 부착된 자동차로의 발전, 꿈도 꿔보지 못하던 창공으로의 비행은 기업가와 일반인의 호주머니를 아낌없이 털게 한 혁명이었다.

 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골드러시 당시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는 자본가들의 투자대상 1호였다. 이전 유럽의 철도버블 역시 산업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거품이 스쳐간 산업은 모두 생활 속에 녹아들었다. 70년대 에너지버블은 산업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했고, 생활에 윤택함을 가져왔다. 부동산 버블은 건설회사의 성장과 건축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아파트 문화를 만들었고 신도시를 탄생시켰다. 미국의 자동차·항공기 버블은 발전을 거듭해 급기야 우주왕복선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철도는 산업의 동맥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했으며 기술의 발전으로 자기부상열차를 창조해냈다.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 버블이라는 오명을 듣던 산업들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기술혁명으로 발전했다. 버블이라는 표면을 가진 산업은 건강하게 발아하는 씨앗으로 언젠가는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운다. 따라서 버블은 산업 초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발전을 위한 필수 수순이다. 인간의 욕구가 산업을 태동시켰다면 버블은 산업을 발전시키는 거름과 같다.

 ‘게거품’이란 말이 있다. 게는 살아 있을 때 거품을 문다. 죽은 게는 절대 거품을 물지 않는다. 즉 거품은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IT산업이 거품이라는 말은 살아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초기태동단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IT거품론’에 역으로 희망을 걸 수 있는 이유다.

 <이경우 IT산업부 차장 kw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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