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장경철(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길영준(삼성종합기술원 상무)
박재민(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공계 진학률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이공계 대학생들도 전공보다는 고시 등 다른 길로 한눈을 팔고 있다. 이와함께 기업에서는 쓸 만한 연구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에따라 여력이 되는 일부 기업은 해외에서 고급 인력을 들여오고 있다. 출연연구소 역시 한창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칠 젊은 연구자들이 대학 교수직에만 눈을 맞출 뿐 출연연에 대한 ‘애정’은 높지 않다. 기업과 정부의 연구소는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두뇌들의 산실이다. 연구소가 비어있을 땐 우리의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킬 수 없음은 물론 미국 등 선진 7개국(G7)을 추월, 세계 최고의 IT강국을 건설한다는 우리의 목표는 현실이 아닌 꿈으로 그칠 줄 모른다. 본지는 지난 한달간에 걸쳐 ‘사람이 경쟁력이다-연구소편’을 통해 이 같은 연구소의 연구인력 현황과 문제점, 개선책 등을 지적했다. 이에 이를 마무리하는 자리로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갖고 국내 연구소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들어봤다. 편집자
△장경철 부회장(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과학기술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기초학문이 튼튼하고 여기에 우수한 인력이 뒷받침돼야 하죠. 하지만 제대로된 연구인력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들립니다.
△길영준 상무(삼성종합기술원)=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IT분야 연구개발 인력들의 수준이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대일로 비교했을 때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인력의 태생적인 한계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외국 연구소의 경우 워낙 연륜이 깊다보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키워주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고 또 연구인력들 역시 제품개발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연구에 접근합니다. 미국의 벨연구소 등을 포함해 해외의 경우 역사가 수십년에 이르고 이에따라 축적된 노하우도 상당합니다. 젊은 연구원들은 이런 전통과 노하우를 흡수, 풍부한 토양 위에서 기술개발에 임합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연구소는 역사도 일천하지만 선진국을 우선 따라잡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기술을 모방하는 문화에 젖어있습니다. 국내 연구 인력은 충분한 역량은 갖추고 있지만 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만한 자극이 없는 것이죠. 또 기업에서 당장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에 치우쳐 있고 젊은 세대들이 연구소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기술의 깊이가 얕고 개념 설계나 시스템 설계, 아키텍처 디자인 등 기초기술 부분에서 매우 취약합니다. 삼성종기원의 경우도 시스템 인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국내에서 찾기 힘들어 해외 인력을 수년전부터 영입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물론 대학에서도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이 부족합니다.
△박재민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정부 출연연구소의 인력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과학기술 인력은 공공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기술개발을 통해 이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는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여도에 비례하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령 의사나 변호사, 교수 등과 비교했을 때 과학기술 인력이 갖는 사회적 가치는 훨씬 더 큽니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보상이 그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사급 이상 고급 기술인력들은 출연연보다는 대학 교수직을 더 선호합니다. 70% 정도의 고급 인력이 대학에 몰려 있습니다. 과학기술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몇년간 출연연에서 대학으로 무려 355명이 이동했습니다. 좋은 인력일수록 대학으로 많이 빠져나갑니다. 출연연은 잠시 거쳤다 가는 곳으로만 생각할 뿐이죠. 특히 가장 왕성히 연구활동을 할 시기인 35∼40세에 대학으로 옮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대학교수가 되면 강의 등에 시간을 뺏기기 때문에 연구에 쏟는 집중도가 그만큼 떨어집니다. 출연연과 비교했을 때 대학교수들이 연구에 투자하는 시간은 5분의 1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경철=우리나라 연구원은 17만9000명 정도입니다. 이 중 62%가 기업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통계는 학사급 연구원을 포함했을 때입니다. 박사급 고급인력은 대부분 대학에 집중돼 있습니다. 박사학위자의 72.6%가 대학에 있고 기업체에는 14.9%만 근무합니다. 물론 대학에서의 연구도 중요합니다만 사실 고급인력은 기업연구소나 출연연에서 직접 연구를 해야 할 인력들입니다. 연구인력의 대학 편중 현상 이외에 우리나라 연구소의 취약한 인프라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기업연구소를 예로 들면 아무리 우수한 인력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이 구축해놓은 기초연구나 데이터베이스가 없으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 역량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죠. 국가 전체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길영준=출연연과 달리 기업연구소는 대학으로의 이직 현상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능력있는 연구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욱 강화해 좋은 연구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경철=인력에 대한 투자나 관심도 면에서 물론 기업이 출연연보다 낫습니다. 생존경쟁에 직면해있는 기업으로서는 전력투구해 인재를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출연연은 인력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길영준=출연연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분명합니다.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해야죠. 즉 고가의 장비가 드는 연구나 장기적인 연구, 데이터베이스 작업 등이 바로 그런 예겠죠. 출연연이 이런 일에 집중한다면 사회적 효과가 클 것입니다. 기업연구소도 인력개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죠. 그래서 삼성종기원에서는 ‘차원관리’라는 제도를 도입, 혁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연구원들의 기술수준을 정량화하고 등급을 매겨 그에 맞는 보상을 하는 것입니다. 연구원들의 기술력 향상을 도모해 세계적인 연구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서죠. 또 연구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스템 전환 작업도 진행중입니다. 1부터 8차원까지 8단계가 있는데 아직 7, 8차원에 해당하는 세계적 최고급 인력은 없습니다.
△박재민=출연연도 비슷한 해결책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연구원들이 모두 대학을 꿈꾸는 상황에서 좋은 연구성과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금이나 연구환경 등 여러가지 사기진작책을 우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구원들이 민간기업이나 대학을 자유롭게 오가며 연구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대학이나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면 다시 출연연으로 돌아오기 힘듭니다. 또 출연연에 몸담고 있으면서 대학이나 기업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어렵죠. 이렇게 발을 묶어두는 것은 오히려 출연연을 기피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연구원들의 유동성을 보장해줘야 출연연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겁니다.
△장경철=연구원들이 목표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와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능력이나 자질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죠. 또 사회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10년씩 장기 투자하는 프로젝트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3년만 지나면 결과물을 요구합니다. 이런 풍토속에서는 IT강국과 과학강국 코리아는 구호로만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길영준=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인력이 길러진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과학자의 인식 향상 등 사회전반적인 문화개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재민=미국과 비교했을 때 박사학위 소지자 비율을 보면 공대는 16%, 기초과학은 5%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배출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공계 인력에 대한 수요는 적습니다. 취직하기 어렵다는 말들을 하죠. 이런 상황은 다시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길영준=아마 시장의 인력과 기업이 찾는 인력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업에서는 시스템을 다룰 줄 아는 인력을 찾는 반면 대부분의 인력들은 기초기술이 약합니다.
△박재민=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선순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기업에서 이런 인력이라도 먼저 나서서 수요를 만들어내고 이공계를 졸업했을 때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돼야만 우수한 인력이 이공계로 진학할 것입니다. 정부에서도 인력 양성책과 함께 수요 활성화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길영준=최근 정부에서 추진중인 인력양성 정책의 방향은 맞다고 봅니다. 특히 우수 인력의 외국 유학 지원은 바람직합니다. 해외로 나갔다가 누가 돌아오겠느냐고 하지만 이들이 해외로 나가 글로벌네트워크를 형성해 놓으면 그만큼 큰 자산은 없습니다. 언제 돌아오든 결국 우리나라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중국만 보더라도 이런 정책을 통해 상당한 혜택을 보고 있죠.
△장경철=이공계 출신들은 박사급이라 하더라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업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다보니 필요한 인력만을 뽑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중소업체로 갈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어렵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죠. 정부가 나서 이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다양한 장기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또 기업들도 이런 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산업개발에 집중해야 앞으로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정리=김인진기자 ij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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