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략적 변곡점

 ◆서현진 E비즈니스 부장

 

 세계적인 기업 가운데는 이른바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에 대비하지 못해 고전하거나 하루 아침에 간판을 내린 곳들이 적지 않다. ‘살아 있는 소매 유통의 교과서’ K마트의 몰락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K마트의 실수는 교통체증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땅값이 비싼 시내 한복판에 체인점 설치를 고집한 것이었다. 게다가 80년대 이후 주요고객인 백인 중산층이 점차 교외로 빠져나가는 시대적 흐름도 간파하지 못했다. 재고는 쌓여가고 잘 팔리는 물건은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구멍가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기업 역사 100여년의 K마트는 결국 기업역사가 60여년이나 뒤진 월마트에 인수되는 수모를 겪고 만다.

 브리태니커의 경우는 전략적 변곡점의 의미를 보다 실감나게 보여주는 사례다. 200년 전통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90년대 초반만 해도 ‘교양있는 서구 가정에서의 필수 소장품’으로 통했다. 5년 단위로 이뤄지는 업그레이드는 사전의 내용과 깊이를 항상 당대 최고의 것으로 유지시켜줬다. 또 직접 판매망 기반의 강력한 마케팅은 한해 매출액을 6억5000만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세트당 2000달러였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순식간에 파산지경으로 몬 것은 제조원가가 1.5달러에 불과했던 CD롬이었다. 급기야 브리태니커는 헐값에 한 개인투자자에게 팔리고 만다.

 서점의 대명사였던 반즈앤드노블의 급격한 퇴조와 한때 세계 톱10 가운데 6개사나 포진해 있던 일본 반도체업체들의 몰락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종로서적의 도산, 한글워드프로세서 개발사인 한글과컴퓨터의 퇴조 등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보잘 것 없던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급상승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여기에는 야후, e베이, 아마존처럼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통해 성공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델컴퓨터처럼 네트워크 만능의 시대를 겨냥한 직접판매(direct sell)로 세계 1위가 된 곳도 있다. 델의 경우는 특히 전문가들이 이미 포화상태라고 지적한 PC시장에 진입, 시장내 가치사슬을 재구축함으로써 부동의 메이저였던 컴팩과 IBM을 따라 잡을 수가 있었다. 한국의 엔씨소프트도 인터넷붐을 능동적으로 끌어들여 동시사용자 30만명 접속수를 기록하며 단번에 세계 네트워크게임 시장을 평정했다.

 수학용어였던 변곡점을 기업 경영이론에 도입한 이가 앤디 그로브 전 인텔 사장이다. 그는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라며 제때 변곡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면 그만큼 성공 확률도 높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변곡점을 성공리에 보낼 수 있느냐는 순전히 타이밍 감각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기업환경에서 전략적 변곡점은 기존의 경영방식과 시장경쟁 등 기존의 구조에 새로운 균형이 가해지는 시점이다. 수학에서는 음이 양의 부호로 바뀌거나 양이 음의 부호로 바뀌는 지점이다. 요즘에 기업에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요인들로는 경기침체, 금융시장 냉각, 정치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에서부터 이동전화가입자 3000만명, 포스트월드컵, 글로벌 및 e비즈니스화 열기와 같은 긍정적인 상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변곡점은 이처럼 거창하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게끔 표가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 변곡점은 매우 미묘하고 사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경쟁자보다 늦게 감지한다면 어느 한순간에 기업을 심각한 지경에 빠뜨리고 마는 ‘독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고, 식탁에 늦게 온 이가 뒷설거지를 하게 되는 법이다. 보이지 않는 변화를 예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남보다 앞서 주변환경에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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