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북한의 가격개혁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uhjj@kinu.or.kr

 

 북한이 최근 취한 ‘가격현실화’ 조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한다는 주장도 있고, 배급제를 폐지했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 취한 조치가 몇 년 후 가져올 효과까지 내다보면서 지나치게 전향적으로 평가하는 측면도 있다.

 ‘가격현실화’ 조치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세 가지 주요 쟁점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배급제 폐지 여부다. ‘배급제=사회주의, 사회주의=배급제’기 때문에 북한에서 배급제를 공식적으로 폐기하기는 곤란하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7월 26일)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쌀값은 인상됐지만 식량을 전인민에게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배급표를 발급한다”고 해 쌀배급제가 유지될 것임을 확인했다.

 이번 조치는 배급제를 폐지하기 위한 조처가 아니라 평양이 아닌 지방에서 유명무실해진 배급제를 복원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암시장이 번성하고 배급망의 기능이 상실된 현상황을 과거의 계획경제로 복원하려는 의도가 이번 조치의 핵심이다.

 둘째, 시장경제 도입 여부다. 이번 가격개혁 조치는 시장경제로 개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암시장을 중심으로 시장화돼 가고 있는 북한의 실물경제를 다시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복원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조치는 지난 98년 인민경제계획법을 입법화해 계획 외적인 암시장 경제활동을 규제하고자 했던 것과 같은 정책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유권 사유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다.

 조총련 조선신보는 “국가가격제정국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이번 개혁은 철저하게 사회주의원칙을 기초로 단행된 조치”라고 밝혔다. “사람들의 경제활동이 화폐에 의한 유통형태를 취하게 돼도 생산수단의 전인민적 소유에 기초를 둔 계획경제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셋째, 암시장 통제 여부다. 북한이 이번 조치에서 기존 암시장을 묵인한다면 그것은 시장경제의 도입이자 배급제 폐지의 전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서 국영상점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내용은 읽을 수 있지만 암시장을 허용한다는 입장은 읽을 수 없다. 북한에서 암시장은 아직 통제의 대상인 것이다. 아마 이번 조치 이후 암시장의 통제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국영시장을 살리고 암시장을 통제하려는 당국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암시장은 계속 번성할 것으로 보인다. 암시장으로의 물건 유출은 불법적으로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국영상점의 가격에 관계없이 계속 될 것이다. 암시장으로 빼돌려야 개인적인 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시장은 계속 번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상품이 공식경제에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중국에서 밀거래를 통해 유입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여전히 암시장에서 유통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경제회생을 위한 근본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번성하는 지하경제를 통제하고 대신 공식경제의 기능회복을 위해 취한 조치다. 중국 쪽에서도 중국의 개혁개방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했다. 중국의 시장경제나 중국식 개방방식, 중국의 농업개혁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의 공식입장도 이번 조치를 개혁이라고 말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선전한다. 북한은 가격개혁의 와중에 자본주의를 비난하고 사회주의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이번 임금인상 조치에서 “사회주의 분배원칙을 올바르게 실현하는 것”임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이번 조치의 결과로 암시장 억제의 효과는 크지 않지만 국가의 재정수입은 증가하게 돼 점차로 계획경제의 기능이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가격인상의 궁극적인 효과는 국가재정 확보에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가 북한학계에서 논의하고 있는 ‘기업간 물자교류시장’을 도입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체제 변화까지 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만 현단계에서 북한 지도부는 매우 수구적인 입장에서 계획경제를 복원하는 데 관심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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